누가 당신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나요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는 막탄이었다.
막탄은 한국사람들에게 특화된 동네다.
호객꾼뿐만 아니라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을 알아듣고, 무려 대화도 된다.
어학원 공부로, 한 달 살기로 온 한국사람들 정말 많았고 우리도 그 무리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노상 과일 가게에선 사장님이고 점원이고 모두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충격적이었던 대화 : 두리안 사 가요. 남자들 정력에 최고야. 하룻밤에 그냥 -
아악! 거기까지 들을게요. 질색하고 손을 내젓자 씩 웃는 주인장.
대체 누가 이런 말을 가르쳐 준 겁니까.
막탄은 네일아트가 정말 쌌다. 인건비가 싸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헷갈렸다. 일단은 감사하기로 했다. 손 발을 내밀고 있는 무수한 한국 사람들 사이에 끼어 우리도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이 아주 기뻐했다. 나도 덤으로 기뻤다.
그동안 거의 시골에만 있었는데, 세부 시티로 나와 커다란 쇼핑몰들이 즐비한 거리를 다니니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새로 지은 백화점 1층에 입점한 미니소에서는 해리포터 굿즈를 쌓아놓고 팔았다. 나는 그리핀도르 발 매트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는데, 머글인 배우자는 이해를 못 했다. 발매트를.. 집에서.. 안 쓰는데.. 왜 사?
이러는 통에 못 샀다. 머글은 뭘 모른다.
필리핀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마사지를 받는다. 길에 플라스틱 의자 몇 개 놓고 마사지하는 사람/받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우리는 시각장애인 분들께 마사지를 받았다.
길에 장애인들이 많다. 자기 일을 하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고.
우리는 마지막 망고 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끝까지 수영.
어린이들은 바다는 싫어해도 수영장은 좋아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아이고 어른이고 조금씩 아팠다. 시간을 빈틈없이 누리겠다는 한국사람다운 일념으로 매일 무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영장을 하루 종일 누비던 막내는 결국 밤새 열이 나서 수영장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예약하면서,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보통 공항 갈 때쯤 집에 가기 싫어 집에 가기 싫어~ 를 주문처럼 외던 나였는데. 조금쯤은 어른이 된 걸까 생각했지만 아마 그건 아니었던 것 같고 이만하면 됐다는 걸 몸이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한 달 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애지중지하던 스테파니아 에렉타가 말라죽어 있다. 알로카시아에는 응애가 창궐해 있다.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비오킬로 프라이덱의 잎매를 닦아내며 나는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긴 여행이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