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건 사고 현장과 얽히고설킨 인간사를 마주하다 보면, 최근 들어 유독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합니다. 기성세대들은 혀를 차며 “요즘 애들이 온실 속 화초처럼 나약해서 그렇다”라고 쉽게 단정 짓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인 ‘보이지 않는 틀’ 속으로 던져집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존 스튜어트 밀이 역설했던 ‘자유의지’는 인간 존재의 펄떡이는 본질이지만, 팍팍한 현실 속에서 그 숭고한 의지는 너무나도 쉽게 짓눌리고 왜곡됩니다.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것은 총칼을 든 거창한 독재 권력이 아닙니다. 법률, 도덕, 인습, 전통, 심지어 예절과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극히 일상적인 사회적 장치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은 무법천지를 막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뼈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견고한 틀은 개인의 고유한 숨결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정해진 기준선에서 단 한 발짝만 벗어나 자신의 취향과 색깔을 드러내도, 세상은 순식간에 그를 ‘이상한 사람’이나 ‘부적응자’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단지 그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뿐인데도 말입니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토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정보는 범람하고 표현의 방식은 무한히 확장되었으며, ‘개성’은 깎아내야 할 모난 돌이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빛나는 가치로 여겨집니다. 이들에게 자신의 자유의지를 맘껏 표현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과거의 낡은 질서와 새로운 감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여전히 녹슨 잣대를 들이대며 이들을 옛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청년들은 그 억압의 논리를 납득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깊은 혼란과 무력감에 빠집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성세대가 쥐여준 낡은 ‘성공 방정식’을 억지로 따라가 보지만, 그것은 마치 남의 몸에 맞춰 재단된 꽉 끼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것과 같습니다. 겉보기엔 그럴싸하고 단정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숨이 막혀 터질 것만 같을겁니다. 남이 세워놓은 번듯한 가치관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정작 ‘나의 의지’가 증발해 버린 껍데기뿐인 삶은 조그만 시련 앞에서도 쉽게 허무로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틀을 완전히 때려 부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공동체는 여전히 필수 불가결한 울타리입니다. 그러나 그 외부의 틀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맹신하고 스스로 굴복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잃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맹목적인 반항이 아닙니다. 외부의 거센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단단한 가치관과 규칙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내 삶의 궤적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설득할 수 있는 내면의 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직 나의 잣대로 묵묵히 선택하고 그 결과에 기꺼이 책임질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이 흔들리는 시대를 휩쓸리지 않고 견뎌내는 가장 단단하고 유일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인생이라는 거친 항해에서 누군가 내 키를 대신 잡아줄 수는 없습니다. 사회는 그저 희미한 등대처럼 방향을 제시할 뿐,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일은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