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지구대는 4개 팀이 4조 2교대로 돌아갑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교대합니다. 어느 저녁 교대 시간이었습니다. 10년 차이 나는 후배와 관내 파출소의 신고 건수를 두고 가벼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밀양 시내에는 파출소가 두 곳 있는데, 전체 신고의 40%가 이 두 곳에 집중될 만큼 격무 부서입니다.
제가 무심코 "통계적으로 여름엔 역전파출소 쪽이 신고가 더 많더라"고 말하자, 후배는 발끈하며 "아닙니다, 형님. 저희 파출소 신고가 훨씬 많아요"라며 맞받아쳤습니다. 저는 112 종합상황실에 근무하는 동생에게 직접 들은 팩트라며 못을 박았고, 후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교대 시간, 그 후배가 대뜸 종이 한 장을 제 눈앞에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뽑아온 '신고 분석표'였습니다. "형님, 이거 보세요. 제 말이 맞잖아요. 저희 파출소가 더 많습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세기의 재판에서 승소한 변호사처럼 득의양양했습니다.
통계 수치는 분명 후배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쿨하게 인정했지만, 씁쓸한 뒷맛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미 지나간 가벼운 대화를 굳이 다시 꺼내어 선배가 틀렸음을 증명해 낸 그 지독한 승부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후배의 득의양양한 표정 위로 부끄러운 제 옛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명절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거실에서 TV를 보던 중, 화면에 나온 어떤 사실을 두고 가벼운 논쟁이 붙었습니다. 아버지가 틀렸다고 확신한 저는 곧바로 반박했고, 아버지는 당신 말이 맞다며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저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 결과를 아버지 눈앞에 들이밀었습니다. "거 보세요, 아버지. 제 말이 맞잖아요."
제가 정답을 증명해 낸 순간, 거실의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멋쩍어하시던 아버지의 굳은 표정. 그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승리감은커녕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해서 얻은 게 뭐지? 그게 아버지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대단한 진실이었나?' 사실, 그 내용이 맞든 틀리든 제 삶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이기고 싶다'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을 파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자주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립니다. 마치 이 논쟁에서 지면 내 인생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죽기 살기로 덤벼듭니다. 유명한 착시 그림 중 '오리-토끼' 그림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부리를 보며 오리라 하고, 누군가는 귀를 보며 토끼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본 것만이 '진실'이라 믿고 서로 틀렸다고 핏대를 세우며 싸운다는 점입니다.
그림 속 동물이 오리인들, 토끼인들 우리 삶에 무슨 손해가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이토록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말은 곧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죠. 그래서 논쟁은 어느새 '무엇이 맞는가'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무너지느냐'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하지만 관계의 세계에서는 논리가 다가 아닙니다. 이겨서 얻는 것은 찰나의 얄팍한 우월감뿐이고, 남는 것은 흉터 가득한 상처와 멀어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틀리는 것은 곧 패배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존심보다 '관계'라는 더 큰 가치를 지켜내는 성숙한 용기입니다.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은 논쟁의 항복 선언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는 마법의 다리입니다. 내 입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사람, 굳이 이기지 않아도 되는 명분 없는 싸움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수많은 갈등의 현장을 지켜보며, 그리고 제 삶의 뼈아픈 실수들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섭니다. 말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이길 것인가, 남을 것인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스스로에게 이 한 가지 질문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정답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을 얻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