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서점이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서점 투어는 멈추기 싫었다. 8월 둘째 주 연휴는 대체 공휴일까지 3일을 쉬었다. 3일 중 하루를 여유 있게 서점 투어를 하면 될 거 같아 연휴 첫날부터 마음이 들떴다. 연휴 둘째 날인 일요일 여유 있게 홀로 길을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중앙동에 있는 '주책 공사'라는 서점이다. 시간이 많으니까 근처 보수동에 있는 '마이 유니버스'까지 들릴 생각이었다. 좀 걸어 다니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로 40여분을 이동하여 중앙역에 도착했다. 약도대로 1번 출구로 나가 '주책 공사'를 찾아갔다.
일요일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문을 연 상가들도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침묵을 하는 듯했다. '주책 공사'가 있는 골목길도 마찬가지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다. 서둘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주책 공사'는 일요일이 휴무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검색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길을 나선 내가 바보 같았다. 솔직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다니
혹시나 해서 보수동 '마이 유니버스'를 검색해보니 마찬가지로 일요일이 휴무날이었다. 허탈함에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요일에 문을 연 서점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유레카!! 있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문현동에 '나락 서점'이란 곳이 있었다.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문현동으로 향했다. 나의 단순함은 몇 분 전의 실망과 허탈함을 금세 잊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단순함이 참 좋다. 내 머릿속은 새로운 서점과 커피 한잔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나락 서점'은 2호선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1호선에서 2호선 환승하는 구간까지는 몇 정거정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1호선 문현역에서 내렸다. 문현역 6번 출구로 나가 서점까지는 걸어서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걷는 도중 길가에 놓여있는 전동 킥보드가 여러 대 보였는데 안전모가 없어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확 타고 가버릴까?'라는 유혹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경찰인데 하며 못 본 척 열심히 걸어갔다.
목적지 근처인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 역 4번 출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뒤쪽으로 보이는 gs편의점 가기 직전 골목으로 들어가면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나락 서점'을 찾았다. 불도 켜져 있는 것이 다행히 휴무일은 아닌듯했다.
나락 서점은 지하 1층에 있었고 내려가는 길목에 떡하니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솔직히 서점을 찾은 기쁨 때문에 저 문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다시 사진을 보니 서점과 꽤 잘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나락 서점은 손목 서가와 다른 점이 있었다. 책 진열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점과 서점지기님의 손글씨로 그 분류를 직접 해놓았다는 점이다. 책을 찾기도 쉬웠고 책에 대한 마음이 보이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서점지기님에게 서점 이름이 왜 '나락 서점'인지를 물었다. 지기님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책을 쓰고, 읽고, 책을 만들며 서로를 안아주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의미가 너무 멋있었다.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을 때 여길 오면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기님도 친절해서 너무 좋았다. 천천히 둘러보시라는 말씀도 해주셔서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락 서점'의 또 다른 재미거리는 책마다 붙어있는 지기님의 해석 글이다. 책에 대한 지기님의 시선을 알 수가 있고 그 책에 대한 궁금증까지 생겼다.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문한 손님들이 한 줄씩 필사를 하는 공간도 있었다. 나도 한 줄 적을까 생각했지만 소심한 성격에 선뜻 펜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다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아직도 아쉬움이 머릿속을 맴돈다. 방명록을 필사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탈바꿈시킨 지기님의 센스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건 다음에 회사에서도 한번 써먹어봐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립작가분들이 토론을 할 것 같은 책상을 보며 다음에 나도 여기서 함께 독서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점은 적은 공간이지만 뭔가 꼭 해보고 싶게 만들게 배치를 잘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가져갈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한 권의 책을 바로 집어 들었다. 그것은 나락 서점에서만 판매한다는 나락 서점 독립작가님들이 모여서 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을 때'라는 책이다. 오직 이곳에서만 판매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희귀본을 구매한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한 권만 사기 미안해 독서노트도 한 권 더 구입했다. 계산을 하며 지기님에게 서점 투어를 한다고 말씀을 드리니 스탬프 투어도 함께 해보라며 다른 서점들이 모두 나오는 스탬프 용지도 주셨다. 하나의 스탬프가 찍히는 모습에 나의 승부욕이 또 발동하며 다른 서점에 또 방문하고자 하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나락 서점'은 내가 원했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지기님의 친절은 하루의 바보짓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