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주말이 왔다. 우리 집엔 나 말고도 독립서점 투어를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우리 집 첫째, 중학교 2학년생인 딸아이다. 녀석도 책을 좋아하고 서점을 좋아한다. 독립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라 하며 꼭 데려가 달라고 한다. 어디를 먼저 방문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딸아이와 함께라면 경치도 볼 수 있는 곳이 좋겠다 싶어 영도에 있는 ‘손목 서가’에 가기로 결정했다.
‘손목 서가’는 영도의 유명한 관광지 흰여울 마을 내에 있었다. 우리 집인 덕천동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네비에 흰여울 마을을 입력하고 딸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서점 투어길의 첫 문을 열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일요일 오전 흰여울 마을 주차장은 한산했다. 차를 세우니 주차요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차 유리창에 주차권을 꽂았다. 주차 후 바다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 바람이 내 몸을 어루만져 주긴 했지만 내리쬐는 땡볕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기 시작했다. 그렇게 햇볕에 노출된 해안 산책길을 10여분 정도를 걸어갔다. 정말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정말 안구가 정화되는 길이 었겠지만 한 여름에는 그냥 에어컨이 간절해지는 그런 길이었다. 서점을 찾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만 같았다. 지쳐 갈 때쯤 왼쪽에 흰여울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고 그 계단을 보는 순간 또 한 번 한숨이 터져 나왔다. 뭔 놈의 계단이 그리 많은지. 이것 또한 물론 다른 계절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계단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50미터 정도 걸어가니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손목 서가는 커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카페 형식의 건물이었는데 첫인상은 오히려 카페에 더 가까웠다. 땀을 많이 흘려 지쳐가던 나는 서점 입구를 보자 다시 기대감에 활력을 되찾았다. 더운지 딸아이가 서둘러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 독립서점이라 그런지 서점 내부는 아담했고 사장님 내외로 보이는 분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서점 안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1층 테라스와 2층 내부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간절했기에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음료를 시킨 후 서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어떤 놈을 가져갈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 서점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을 데려가고 싶었기에 나는 사장님께 추천할 만한 책이 있는지 물어봤다. 사장님은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그런 거 없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이게 뭔가 싶었고 그동안 품었던 독립서점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생각한 독립서점은 이게 아니었는데. 서점지기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있고 진열된 책들도 각자 의미를 두고 일반 서점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야 하는 건데.. 사장님의 답변을 들은 후 책들을 둘러보니 정말 진열된 책들은 특별한 규칙이 없었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싶어 그래도 그 서점에 가장 어울릴만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이 이 서점과 잘 어울린다고 어필하는 한 녀석을 발견했다. 제목도 '오천 번의 생사'로 뭔가 내가 이 서점의 주인공이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끌림대로 그 녀석을 골라 계산했고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창가 자리가 두 군데 있었는데 역시나 모두 주인이 있었다. 창가 뷰가 정말 좋았고 멍 때리고 앉아있기에 딱 좋아 보였다. 솔직히 2층도 창가 뷰 말고는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책을 사서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카페에서 펺안하게 차를 마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장님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진짜로 차를 마시려면 편하게 넓은 곳에서 마시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런 것이다. 혹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분들은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 거기엔 아이들이 마실만한 음료가 없다. 물론 케이크 같은 디저트도 없다.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딸아이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내가 선택한 녀석을 손에 들고 첫 번째 방문지를 그렇게 기념하며 첫 번째 목적지의 추억은 설렘을 시작했으나 고됨과 실망 그리고 한줄기 빛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