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훈 Jan 17. 2016

니체와 릴케가 사랑한 여자

-루 살로메의 마력


망치든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가 함께 사랑한 여자, 루 살로메-




이 여인이 니체와 릴케의

사랑을 거절하여

절망과 고독을 주었기에,

그들의  철학과 시는 더 깊어졌는 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랑은 비극에 기초해 있다.

행복한 사랑은 넘쳐서 끝장이 나고

불행한 사랑은 모자라서 끝장이 난다."


그녀가 한 말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말입니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융, 바그너...  

철학, 문학, 정신분석학, 음악 등 각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루 살로메를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모두 그녀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 퇴니스, 레데부르크, 에빙하우스, 베네킨트, 크누트 함순, 레드풍 토프, 마틴 부버, 슈니츨러, 슈탈, 타우스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럽의 지성들,  

그들의 사랑을 넘어 숭배를 받은 여자,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모두 거절한 여자- 루 살로메.

 

그래서 루는 남자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존재,

그러나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여자라는 세기의 '팜므파탈'이자,

자유로운 여성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러시아 장군의 딸로 태어나

결핍 속에서 품격을 지켜야 했던 루 살로메-


"어느 별에서 내려와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운명입니다."

" 내 인생에 새로운 여명이 빛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빠져버린 니체의 말입니다.


루는 니체의 청혼을 거절하고, 니체의  친구인 레와 정신적 동거에 들어갑니다.

니체는 질투를 못 이겨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도 하고,

루에 대해서는 미움과 사랑이라는 극심한 감정에 빠져 10년이 넘는 세월을 광기에 빠지게 됩니다.


루가 자신이 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되자, 니체는 저주의 말을 남기며 결별합니다.


"조그맣고 나약하고 더럽고 교활한 여자, 가짜 가슴이나 달고 다니는 구역질 나는 운명!"


24살에 바젤대학의 철학과 주임교수가 된 니체의 말입니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그 나이에 철학부문에서 이런 위치에 오른 사람이 없었기에 니체의 이 말은 그의 책  제목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사랑은 이처럼 지성조차도 유치하고 저열하게 만드는 겁니다.

   

니체는 결별을 선언한 후에도 계속 루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그 편지는 중간에 니체의 친구인 레가 가로챘고,이런 내막도 모르는 상태에서 절망에 빠진 니체로부터 저주의 말을 듣게 되는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내게 준 행복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어요.

 그래도 당신은 값진 고통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 않나요?"


루 살로메가 만나는 남자들을 파탄시켰다는 것은 여자를 결혼이나 '소유'라는 관점에서 본 남자의 시각입니다.  


루의 지성과 내면의 여성미는  그녀가  만나는 니체와 릴케 등 천재들의 영감을 창조적으로 자극해, 문학과 철학에서  엄청난 저작들을 탄생시키게  합니다.


니체는 루와 이별한 상처를 안은 채, 그 자신의  대표적 저작인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를 불과 열흘 만에 완성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루에 대한 니체의 절망과 상처, 분노는 책에도 나옵니다.      

   

"여자를 보려 하는가? 회초리를 잊지 말아라."


'신은 죽었다!'

 이 말을 한 니체를 서서히 죽인 건

신이 아니라 한 여자, 바로  루 살로메였습니다.


여자에게 화산 같은 격정을 처음 느꼈던 니체는 루에게 사랑을 거부당한 상처의 늪에서 평생을 허덕였지만 그의 대표적 저작은 니체가 사랑의 상처를 잊기 위해   저술에 몰두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루는 니체에게 평생을 방랑과 절대 고독의 삶을 전전하게 만든 겁니다.

 

루에게 버림받은 레는

4년 뒤, 루와의 추억이 깃든 바닷가 절벽에서 투신자살을 합니다.   


루와 결별한 릴케가 정신이상까지  보이자

루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자 프로이트의 유능한 제자 타우스크 박사조차  루를 보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루가 떠나자 그는 갈곳을 잃고

자살해 버립니다.


루가 자신과 결혼해 주지 않는다면

자살하겠다는 남자 카알 안드레아스-

그는 베를린대학 언어학과 교수였습니다.


루의 식탁에서 가슴 한복판에 칼을 꽂고 쓰러져  결혼해 주지 않는다면 바로 죽어버리겠다는 '목숨을 건 청혼'에 놀라서  루는 조건을 세워 청혼을 수락합니다. 이때 루의 나이가 불과  26살입니다.

결혼조건은  '성생활이 없고, 루가 다른 남자들과 만나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독신결혼'입니다.


루는 36살이 될 때까지 처녀의 몸을 지켰기에,

유럽의 지성들은 그녀의 신비함, 지성, 매력에 빠져 구애를 넘어서서 거의 숭배하는 광신도가 됩니다.


미모도 아니고, 유혹도 아닌, 지성과 신비함으로 수많은 지성적 남자들의 숭배와 구애를 받았던 이런 여자는

역사상 루 살로메 이외에 없었습니다.  

 

이름뿐인 남편의 자리에 만족하며

루의 앞에 줄 선 남자들을 지켜보며

질투를 안으로 다스려야 했던,  행복하지만  불행한 남편


이들의 '독신결혼'은

43년동안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루를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루가 아니라 하녀를 임신시켜 딸을 낳게 합니다.

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분노했지만, 그녀를 훗날 자신의 딸로 입양합니다.  


피델레스는 루와 헤어진 후 평생을 독신으로 삽니다.


르네였던 필명이 여자 같다고 루가 말하자,

릴케는 자기의 이름조차 고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루 살로메를  '루'라는 애칭으로 부른 것은 릴케였습니다.


릴케가 루에게 즐겨 낭송해 준 것은

성경에서 '사랑의 장'으로 말해지는 <아가서>의 한 대목입니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대는 내 마음 사로잡아

우리는 그대 눈 속에 하나가 되고

그대의 목걸이로 하나가 된다.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루는 릴케와 결별을 했지만 ,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났으며

4백여 통의 편지를 교환합니다.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릴케의 작품을 유일하게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사람, 그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평가해 준 여자는, 바로  루였습니다.




릴케는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자극한 실체, '루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를 통해


눈이 없어도 루를 볼 수 있고

귀가 없어도 루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발이 없어도 루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루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팔이 꺾이면 가슴으로,

뇌를 불 지르면 피 속에 루를 실어 나르겠다고 표현합니다.


시인다운 죽음-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죽어가던 릴케는 루가 거부하자,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면서도 그가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사랑의 절정입니다.


"나의 어떤 점이 루를 실망시켰는 지 물어봐 주시오."


정신분석학의 태두인 프로이트는 말년에 루 살로메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루 살로메처럼 그토록 빨리, 그토록 훌륭하게,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은 만나 보지 못했다...

니체는 그녀가 악마같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세기의 천재들이 두려워 할 정도의 뛰어난 지성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치명적인 매혹을 루 살로메는 갖고 있었던 것이죠.

   



루 살로메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는 사랑 때문에 죽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의 결핍에 의해서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나 사랑의 결핍으로 정작 죽어간 것은 루가 아니라, 그녀로부터 사랑의 결핍을 느낀  남자들이죠.


루는 정신의 사랑과 육체의 사랑을 구분했습니다.

정신적 사랑을 하던 지성들과는 육체의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루가 남자들에게 준 것은 '지독한 갈증'과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치명적 매력이었죠.


이것을 니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 지성보다 앞서는 건,  운명처럼 다가오는 삶의 격정의 순간이다."


그녀의 어떤 매력이 남자들을  타오르게 했을까요?


타오르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그걸 견뎌내지 못하는 영혼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는 것이죠.


"모든 사랑은 비극에 기초해 있다.

행복한 사랑은 넘쳐서 끝장이 나고

불행한 사랑은 모자라서 끝장이 난다.


그러나 모자란 경우가 더 느리고 고통스럽다."



그래도 사랑이 적어서 오는 고통보다는,  넘치는 사랑의 고통이 더 행복하겠지요.


당신이 운명처럼 만나게 될  넘치는 사랑을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있는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