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는 아직 끊기지 않았다
겨울입니다.
찬 바람은 거리에서,
마음의 한 가운데서 불어옵니다.
이 겨울,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당신에게
한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직
봄은 멀리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은
나 자신을 아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당신을 위해,
당신의 봄을 위해,
마음의 아궁이를 지피는
장작 두 개를 보냅니다.
부족하겠지만
그걸로 오늘 밤은 나시지요.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김재진
실패가 나를 눕게 했을 때
번민과 절망이 내 인생을
부러진 참나무처럼 쓰러지게 했을 때
날마다 걸려오던 전화
하나씩 줄어들다 다 끊기고
더 이상 내 곁에
서 있기 힘들다며
아,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부터 돌아섰을 때
마음에 칼 하나 품고
길 위에 서라.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
이제는 어둡고 아무도
가는 사람 없는 길.
적막한 그 길에 혼자서
다시 가라.
돌아선 사람을 원망하는 어리석음
조용히 비워 버리고
가진 것 하나 없던
처음으로 돌아가라
마음의 분노 내려놓고 돌아보면
누구도 원망할 사람 없다.
원망은 스스로를 상처 내는
자해일 뿐
가진 것 없던 만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