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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Jul 20. 2016

잊혀진 제국의 문장, 이화문李花紋

1887년, 조선은 5백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조선의 국왕은(고종) 황제, 광무제가 된다.  

    

조선은 임금의 국가다. 그래서 용과 봉황, 해와 달이 함께 있는 오악일월도는 왕권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독립국가를 선포한 대한제국의 상징이 바로 '이화문李花紋'이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나타나는 국가상징이었다.        


제국은 1910년 한일병탄과 함께 멸망했다.

독립국으로 태어난 대한제국은 불과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문양, 이화문은 우리에게서 잊혀져 갔다.     


대한민국- ‘민국(民國)’이라는 말은 제왕이 사라진 나라다.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帝國)이 국민의 나라인 공화정, 민주정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대한이라는 국호는 이었지만 대한제국은 잊었다. 그래서 이화문양도 그렇게 잊혀진 것이다.

북한은 대한제국을 계승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조선을 국호로 사용하고  남‧북한을 남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것이다.      

국가의 상징은 구성원의 단결과 복종, 자발적 참여, 존경을 이끈다.  대외적으로는 국가를 상징한다. 그래서 국가(國歌), 국기(國旗), 국화(國花)는 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이자 깃발이고 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치하에서 준비 없이 맞게 된 해방과 미군정이 이어지며 서둘러 건국을 하다 보니  국가의 상징인 국호, 국가, 국기, 국화에 대해 깊은 논의가 없이 건국되었다.     


그래서 특정일을 기념하는 행사장에는 국가인 애국가 대신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는 주장이 나오고, 나라꽃인 무궁화 축제는 없어도 일본의 국화인 ‘벚꽃축제’는 곳곳에 널려있다. 심지어 국회 앞 윤중로에서도 매년 봄이면 벌어진다. 아직도 국가상징에 대한 ‘대표성 논란’이 있는 것이다.  

이화문의 다양한 모습

제국의 상징인 이화(李花) 문양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가문, 전주이씨를 상징하는 자두나무, 즉 자두나무의 자두꽃을 상징화한 것이다. 흔히 같다고 생각하는 이화여대의 꽃은 이화(梨花), 즉 배꽃이다. 한자에서 보듯이 전혀 다른 것이다.     

배꽃을 형상화한 이화여대 배지

대한제국이 선택한 상징, 이화문은 황실의 일상품부터 대외적으로는 훈장, 동전, 우표,어검, 어차까지 다양한 곳에 제국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은 ‘이제 대한제국이나 조선은 완전히 멸망했다’, ‘이제 조선땅은 일본이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다!’ 라는 걸 실감나게 한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화문이 새겨진 보검


그래서 왕권의 상징인 궁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지방은 왕권을 수행하는 지방관아를 부수고 그 자리에 황국의 신민을 기르는 ‘국민’ 학교를 세웠다.        


상징은 국민과 민족의 단결을 의미하기에 상징에 대한 훼손은 민족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일본은 조선왕실을 능멸하기 위해 창경궁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워 이름까지 바꿔 ‘창경원’이라는 유원지를 만들었다. 이제까지 임금이 머물며 국사를 논하던 신성한 자리가 개, 돼지와 온갖 짐승이 뛰어다니는 자리로 전락했고 그걸 서민이 들어와 구경하고 즐기며 노는 자리로 만든 것이다. 간교한 일제의 술책이다.       

이화문 메달

일제는 창경원에 이화문을 새긴다.     

이것은 조선을 존중하려고 한 게 아니라 조선왕도 이제는 일본의 여러 귀족 가운데 한 가문에 불과하다는, 격하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정신을 짓밟힌 민족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걸 그들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창경원에 새겨진 이화문
이화문이 새겨진 대한제국의 동전


그래서 ‘조선 놈은 맞아야 돼, 조선 놈은 단결을 못해’라는 민족의 열등성을 강조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 일본순사, 한국의 앞잡이, 해방후 친일파, 고문 경찰, 중앙정보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졌다. 무섭고도 질긴  파급력, 악의적인 파급력이었다.               


조선은 이씨가 세운 왕조에 불과한 걸로 조작시킨다. 그래야 일제침략은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 한 가문이 망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조선은 그래서 ‘이씨조선’, 다시 이조(李朝)로 격하되고 조선왕은 이왕(李王), 그곳에서 일하는 관리는 이왕직(李王職)으로 격하된다. 이건 조선을 서서히, 그리고 철저히 밑바닥까지 완벽하게 붕괴시키는 일제의 간교하고도 간악한 공작이었다.      

     

조선총독부 문장


1910년 8월 29일 밤.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린 국치일로 기억하는 이 날, 조선을 멸망시킨 주역들은 축하연을 펼치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으하하하! 하하하!”

“조선이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조선이 마침내 일본 땅이 되었다, 으하하하! 정말 기쁘네, 기뻐!”


당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 正毅) 조선 초대 총독이 축배를 들며 흥에 겨워 즉흥시를 읊었다.  
    

‘가토(加藤)와 고니시(小西)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 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이에 곁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의 심복이 이를 받아 읊었다.      


‘도요토미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가토와 고니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 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다. 마침내 도요토미의 조선정벌의 꿈을 300년 만에 자신들이 이뤘다는 감개를 읊은 것이다.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과  의병이 통곡할 일이다.


그래서인가.      

조선총독부의 문장이 놀랍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다.

이뿐이 아니다.     

2008년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도요토미의 문장은 슬그머니  다시 등장한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도 정부나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재야의 조형균 관장이 지적하면서 알려진 것이다.      

“예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의 기자회견장 연단에 그 마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자리에 등장할 수 있나. 그날 바로 일본인 친구에게 국제전화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그분도 놀라면서, 아 그래요? 몰랐는데요, 하더니 거 다분히 의도적인데요, 그러는 거예요.” (한겨레신문)    


중국과 인도까지 지배하려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뒤를 이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지배를 꿈꾸었던 일제의 야욕이 숨어있다 다시 드러난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에 나타난 히데요시 문장


그들은 히데요시의 문장은 원래 일본 천황의 문장이었으나 이를 천하를 통일한 히데요시 가문에 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왕, 북한에서는 왜왕으로 부르는 천황의 공식 문장은 국화 문장이다. 당시 명목 뿐인 천황에서 받아서 썼든 어떻든 이건 히데요시의 문장이다.      

일본왕의 문장

토요토미의 문장은 오동잎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리를 나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 그 오동의 신성함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휘날리던 총독부의 문장으로도 사용했던 ‘고시치노 기리’(五七桐)다.     

이 문장은 큼직한 오동잎이 아래로 세 갈래, 그 위에 오동꽃 세 송이가 나란히 솟아 있는 형상인데. 세 송이 꽃 중 가운데 꽃은 꽃잎을 모두 7장, 양옆의 꽃들은 각각 5장씩 달고 있다.    

 

일본 총리실 문장


이 문양은 침략과 싸움을 즐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다.  조선총독부도 사용했으며, 지금 현재 일본 총리실이 그대로 쓰고 있다. 일본은 재일동포가 주 대상인 외국인등록증에도 지문날인을 감추는 가리개처럼 비닐커버에 이 마크를 박아 넣었으며, 대마도에 있는 비운의 덕혜옹주(德惠翁主) 기념관에도 같은 마크를 달아 놓았다.           

도쿠가와 막부의 문장


이들이 도쿠가와의 문장을 안 쓰고 히데요시의 문장을 쓰는 건 아시아지배를 꿈꾸었던 일본 팽창기의 힘을 그리워하고 천황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을 지배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해서, 할수만 있다면  또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일본은 의도적으로 이런 수작을 하는 지도 모른다.

  

국화문양의 일본여권


일본은 여권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왕실의 국화문장을 쓰면서,  총리실은 갑자기 히데요시의 문장을 쓰고 있다. 일본의 팽창욕구, 침략의 야욕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화 정권의 지방정부로 만들고, 일본은 이처럼 자신들의 역사 안에 우리를 교묘히 가두려 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역사와 국가상징에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상징인 고구려의 삼족오도 중국을 지배했던 치우천황도, 자주국으로 우뚝 서려했던  대한제국의 이화문도 다 잊고, 다 잃어버렸다.      


지금 이화 문장을 쓰는 곳은 없다.

한 군데 있다면 전주 이씨 종친회인 이화회관과 그들의 간행물에  쓰는 이화문이 그 맥을 힘겹게 이어갈 뿐이다.


이화문을 소홀히 하다 보니 심지어 이화문을 유골함 문양으로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상징을 소홀히 하는 한 우리를 단결시킬 힘은 사라지는 것이다.


독립과 자주를 말하던 최초의 문장인 이화문이나 한민족의 기개를 떨친 삼족오 문장은 그냥 버려두고 잊어버리기에는 역사도, 그 문양에 담긴 정신도 아까운 것이다.

왕조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아도 남겨진 역사의 힘은 현대적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도 필요하다. 일본은 몇백 년 전 문장도  계속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쓰는데 우리는 늘 새로운 것만 찾는다.


청와대의 문양인 봉황과 무궁화



박근혜 정부는 올해 35억 원을 들여 대외에 상징할 한국 이미지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창조적인 한국)를  선택하였다. 35억 원이나 들여 이 한심한 일을 일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디자인조차 프랑스 것을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대한제국 당시, 송병준과 이완용은 조선을 일본에 서로 갖다 바치는 공을 독차지하려고 온갖 이전투구를 했고 심지어 상대를  제거하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일본은 이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기 위해 헌법도 바꾸려고 한다. 군대를 만들어 다시 침략의 발톱을 세우는 일본을 보면서, 한민족의 미래를 이끌  믿을 수 있는 지도자는 과연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조선인은 안돼.”라는 일제의 비웃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그 거울을 잃어버린 민족은 희망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국민의 깨어있는 자각만이 지켜줄 뿐이다.     

     





이 글은 한천군 작가의 자두꽃 글에서 힘과 의욕을 얻어 썼습니다.

대문사진은 이화, 자두꽃이고 이화문양은 문 화컨텐츠닷컴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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