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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Jan 12. 2016

좋은 글을 쓰는 법

-윤오영의 '양잠설(養蠶說)'을 통해서

누구나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을 제대로 알리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분들을 위해 그 방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글을 쓰는 데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이 ‘삼다(三多)’가 최고일 것이고 글을 쓴 후 많이 다듬고 고치는 퇴고의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라면 이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서체를 만든 명필 추사(秋史)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법이 없어서도 안 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 亦不司”라 했습니다.   


글 쓰는 것도 사실 이와 같습니다.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친구가 며칠 만에 지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며칠은 무슨 며칠, 지금 단번에 지었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소동파가 밖으로 나간 뒤에 자리 밑이 불쑥해 들춰보니 여러 날을 두고 고치고 고치고 한 초고(草稿)가 한 무더기가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시간을 갖고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이 문장의 진리입니다.


러시아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했다는 투르게네프는 어느 작품이든지 써서는 곧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 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내어보고 고쳤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명문을 필사를 하는 겁니다. 눈을 통해 읽는 것과 필사는 다릅니다. 필사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문장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지만 이것도 정성이 안 가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는 자식들이 필요한 돈을 요구할  때는 자기의 글을 필사해 온 만큼만 주었다고 합니다. 원고를 쓴 사람도 있는데, 필사를 통해 글을 쓰는 작가의 고통과 마음을 좀 더 이해하라는 뜻이겠지요.


요즘은 책에 작가의 인지가 많이 생략되지만 작가 조정래는 지금도 작품에 인지를 붙이고 그 도장을 손으로 직접 찍습니다.


 “인지 도장을 찍는 것은 마치 내가 지폐를 새로 발행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교과서에 다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중, 고교 교과서를 다시 보는 것도 좋고, 대학의 출판부에서 나온 좋은 글쓰기의 책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이화여대에서 나온 글쓰기 책과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태준은 당대에 이미 “시는 정지용이요, 소설은 이태준”이라는 말을 들은 작가입니다. 그런 이가 쓴 글 쓰는 법이니 탄탄한 문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좋은 글을 아직  쓰지 못하지만,  글을 쓸 때 저 자신을  늘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 있습니다.


윤오영의 '양잠설(養蠶)'이라는 수필입니다. 윤오영은 수필가 피천득과 양정고 3년 선후배 사이이면서 평생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국문학자 정민 교수는  "윤오영의 문체는 간결하고, 함축과 여운이 유장하다. 그의 수필은 한국 수필이 거둔 가장 빛저운 수확의 하나"로 극찬한 바 있습니다.


윤오영의 호는 치옹(痴翁)과 동매실주인(桐梅室主人)입니다.


 '어리석은 늙은이'라는 겸손과, 오동과 매화방의 주인이라는 곧은  마음이  담긴 말을 아호로 쓴 거죠. 마치 추사가 노년에 자신의 아호를 스스로 낮추어 과천에 사는 늙은이, '과노(果老)'라고 했음을 연상하게 합니다.


'양잠설'은 누에를 키우는 이야기를 통해 글쓰는 자신을 돌아보는 교훈을 얻는 내용입니다.


제가 받았던 감동을 함께 느끼시며,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에 는 3천년 전부터 실을 뽑기 위해 길러왔다. 양식 누에는 아무리 변태를시도해봤자 번데기만 되기에 '비극의 벌레'다.





                                          양잠설

                                                                                          


    

                                                                                                 윤오영





어느 촌 농가에서 하루 저녁 잔 적이 있었다. 달은 환히 밝은데, 어디서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더러 물었더니 옆방에서 누에가 뽕 먹는 소리였었다. 여러 누에가 어석어석 다투어서 뽕잎 먹는 소리가 마치 비 오는 소리 같았다. 식욕이 왕성한 까닭이다.  이때 뽕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며칠을 먹고 나면 누에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서 피부가 긴장되고 윤택하여 엿 빛을 띠게 된다.  그때부터 식욕이 감퇴된다. 이것을 최면기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단념을 해 버린다. 그러고는 실을 토해서 제 몸을 고정시키고 고개만 들고 잔다. 이것을 누에가 한  잠 잔다고 한다. 얼마 후에 탈피를 하고 고개를 든다. 이것을 기잠(起蠶)이라고 한다. 이때에 누에의 체질은 극도로 쇠약해서 보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다시 뽕을 먹기 시작한다. 초잠 때와 같다.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최면, 탈피, 기점이 된다. 이것을 일령(一齡), 이령 혹은 한 잠, 두  잠잤다고 한다. 오령이 되면 집을 짓고 집 속에 들어앉는다. 성가(成家)된 것을 고치라고 한다. 이것이 공판장에 가서 특상, 1등, 2등, 3등, 등외품으로 평가된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사람이 글을 쓰는 것과 꼭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대개 한때는 문학 소년 시절을 거친다.
이때가 가장 독서열이 왕성하다. 모든 것이 청신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이때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의 포부는  부풀대로 부풀고 재주는 빛날 대로 빛난다.  이때 우수한 작문들을 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는 사색에 잠기고 회의에 잠긴다. 문학 서적에서조차 그렇게 청신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혹은 현실에 눈떠서 제각각 제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직 침울한 사색에 잠긴다. 최면기에 들어선 것이다.

한  잠 자고 나서 고개를 들 때, 구각(舊殼)을 벗는다. 탈피다.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인생을 탐구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적으론 극도의 쇠약기다. 그의 작품은 오직 반항과 고민과 기벽에 몸부림친다. 혹은 그를 요사한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글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전에 읽었던 글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이제 이령에 들어선 것이다.

몇 번이고 이 고비를 거듭하는 속에 탈피에 탈피를 거듭하며 자기를 완성해 간다. 그 도중에는 무수한 탈락자들이 생긴다. 최후에 자기의 모든 역량을 뭉치고, 글 때를 벗고, 자기대로의 세계에 안주한다. 누에가 고치를 짓고 들어앉듯 성가한 작가다. 비로소 그의 작품이 그 대소에 따라 1 등품, 3 등품으로 후세의 평가의 대상이 된다.


대개 사람의 일생을 60을 1기로 한다면 20대가 1령기요, 30대가 2령기, 40대가 3령기요, 50대가 4령기요, 60대가 되면 이미 5경기다. 이제는 크든 작든 고치를 짓고 자기 세계에 안주할 때다.

이때에 비로소 고치에서 명주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뽕을 먹고 삭이니만치 자기가 부단히 고무되고 고초하고 탈피해 가며 지어 논 고치[境地]만큼 실을 뽑는 것이다. 칠십이든 구십이든 가는 날까지 확고한 자기의 경지에서 자기의 글을 쓰고 자기의 말을 하다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20대~60대로 예를 들어 말한 것은 육체적인 연령을 말한 것은 물론 아니다. 육체적인 연령에 대비해 보는 것이 알기 쉽기 때문이다. 우수한 문학가는 생활의 농도와 정력의 신비가 일반을 초월한다. 그런 까닭에 이 연령은 천차만별로 단축된다. 우리가 남의 글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는 수가 가끔 있다.

"그 사람은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
뽕을 덜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함이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잠을 덜 잤다는 말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어딘가 부족해."
뽕을 한 번만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기가 일회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 사람 아직 글 때를 못 벗은 것 같애."
5경기를 못 채웠다는 말이다. 자기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원로지. 그런데 별 수 없을 것 같다."
병든 누에다. 집 못 짓는 쭈그렁밤송이다.

"그 사람이야 대가지. 훌륭한 문장가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고치를 못 지었다는 말이다. 일가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게서 문장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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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잠(起蠶) : 외피를 갓 벗은 누에 새끼.   

2) 청신(淸新) : 맑고 산뜻함.   

3) 구각(舊殼) : 낡은 껍질.  

 4) 글 때를 벗다 : 자기가 쓰는 글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인해 완전치 못했던 글이 완전히 자기의 개성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담았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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