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심삼일이, 누군가의 커리어를 흔든다
[현재 30대인 작가가 80대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젊은 날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미리쓰는 자서전]
2025년 여름, 작심삼일을 청산하고 운동을 가기 시작했다.
그건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만 먹은 적은 수십 번도 넘었는데,
정작 꾸준히 간 건 그 여름이 처음이었다.
사실 비결은 단순했다.
예전 직장 선배가 그랬다.
“작심삼일인 사람은 반드시 큰돈을 지불하고 레슨을 끊어야 꾸준히 하게 돼.”
나는 그 말이 꽤나 진리처럼 들려서, 결국 1:1 필라테스, 수영, PT까지
제법 비싼 운동들을 등록했다.
하지만 운동을 등록했다고 해서 바로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해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인한 어지러움이라든가,
몸이 조금 무겁다는 핑계를 대며
레슨을 종종 취소하곤 했다.
심지어 당일 아침에도.
그럴 때마다 수업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고,
결국 내 돈으로 내 의지를 갉아먹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다 어떤 하루가 있었다.
회사 일로 지쳐 있었고,
성과 압박으로 숨이 턱 막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모든 것이 버거웠다.
그런데 문득,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내 일 하나 무너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왜 내 운동 선생님의 일은 그렇게 가볍게 여겼을까?”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 사람도 자기 커리어를 걸고 나를 가르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레슨을 취소할 때마다
그 사람의 하루 일정은 흐트러졌을 것이고,
나라는 수강생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마저
조금씩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운동 수업은 단순히 내가 몸을 관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전문성과 리듬이 쌓이는 자리라는 걸.
내가 그 리듬을 계속해서 흔들고 있었다는 걸.
그건 작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의 커리어와 자존감, 성장을 담보로
내 컨디션과 기분을 던지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 여름 이후, 나는 달라졌다.
몸이 조금 불편해도 일단 수업에 가보려고 했다.
정말 힘든 날엔 미리 양해를 구했다.
‘내가 빠지면 저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다시 설계해야 할까?’
이 질문을 한 번 더 떠올리면서.
2025년 여름.
나는 운동을 시작했고,
조금은 ‘남의 일’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