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03 노예로 산다는 것

책임감에서 회피하는 삶

by 삼계탕

[현재 30대인 작가가 80대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젊은 날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미리쓰는 자서전]


그 시절 나는

책임감에서 어떻게든 회피하려 발버둥을 쳤다.


회사에서도 진급을 거부하고,

새로운 무엇을 맡아 하는 것에 진저리를 치며

내 안전지대 안에서만 똑똑하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남으려 나를 붙들어 맸다.


허나 애석하게도 나는 성공을 원했다.

성공이란 무엇이냐.

기꺼이, 내가 만들어 내놓는 것에 책임을 다하여

그 어떤 피드백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

그러다 보면 어느새 와 있는 성공이란 것.


내가 원하는 삶이 책임의 회피와는

매우 동떨어진 것쯤은 그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필요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진정 나는 주인으로 살길 원하는가?

내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직접 선택하고

직접 해결하는 주인으로 살길 원하는가?

아니면 지시해주는 사람 아래서

마음은 좀 더 편안히

지시 받은 일만 하는 걸 원하는가?


이런 질문에서 대부분은 주인된 삶을 좋게 보겠지만 아니, 진지하게 한 번은 생각해볼 문제다.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내 힘으로 처리하고

의사결정하는 삶이 과연 쉬울까?

그 무게는?

그 고통은?


그 무거운 두려움을 기꺼이 감내할 그릇이

내 안에 있긴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지?

아직이라면 언제쯤 생기지?


그 그릇도 빚어야 한다면 굳이 왜?


그때 나는 주인으로 살 것이냐, 지시받으며 살 것이냐. 그 양날의 검에 존재하는 장단점을 비교하며

수도 없이 갈팡질팡 했다.


중요한 건 그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감히 그 삶을 재단하고 비난할 건 아니라는 것.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남편을 뒀으니

지시 받으며 사는 서포터로 남을까?

그래도 내 일에서만큼은 누구 지시를 받긴 싫은 걸?


....


삶이라는 다양한 역할극 속에서

내가 주인으로 존재하고 싶은 영역이 따로 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영역이 따로 있음을.

깊은 고민 끝에 깨달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는 영역에선

누군가 나에게 지시내리 걸 극도로 싫어했다.

다만 그 외 조직 관리 차원에선

누군가의 밑에 있길 바랐다.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내 솔직한 마음이 이런 걸 어떡하랴.


이토록 삶은 복잡한 것이었다.


분명한 건

내가 어떤 역할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상황에 휩쓸리다 보면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


아주 잘 나가는 남편을 두고

그 남편의 그림자로서 럭셔리하게 사는

예쁜 언니가 한 명 있었다.

가만보니 그녀는 사실 주인공이 되고 싶던 여자였다.

남편에 그림자에 갇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주인력을 어디 분출하지도 못하고,

남들이 모르는 사이 분노만 쌓고 있었다.


정말 부럽지만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애매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녀.


음 그래,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내가 주인으로 살고 싶은 영역만

슥슥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손 쓸 수 없는 것에 진 빼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해보았다.


그야말로 몰입.


기꺼이 책임감을 지고 나아가고 싶은 부분을 선별하고, 죽어도 회피하고 싶은 영역을 제거하는 것.


그때 내 나이 32세, 어느새 삶이 명료해져 갔다.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2025.07.02 출퇴근 왕복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