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30대인 작가가 80대 죽기 하루 전 자신을 상상하며 지금 젊은 날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써내려가는 미리쓰는 자서전]
환경을 바꾼다는 것
32세 여름 7월.
당시 나는 월수금은 서초동 교대로
화요일 목요일은
상암동 방송국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집은 인천 구석탱이.
30대 특유의 애매한 무력감에 빠져있던 당시는
그놈에 출근길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때 월수금 출근은 수월했다.
인천 바로 우리 집 앞에서 교대까지 가는 직통 버스가 있던 터라, 2시간이 걸릴 지언정 가는데에
큰 에너지가 들지 않았다.
단순함의 힘이었다.
그 직통 버스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당시 나는 아침잠으로 늘 고생을 하고 있었어서
9-6시 출퇴근이 필수인 회사들은 거르고
거의 프리랜서로만 일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면 이것도 능력이 되니까 가능했다. 찬란했다 내 젊은 날)
월수금 나가는 회사는 9시 출근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출근이라는 약속을 지키는 것보단,
구성원 개개인의 아침을 살려야
하루가 산다는 대표의 철학 때문이었다.
그 부분을 내심 동의하고 있던 나는
누가 시켜서라기 보단 자발적으로 그 룰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 룰을 지키는데에
집앞 통근 버스는 큰 역할을 했다.
새벽 6시에 눈을 떠 그 버스에 몸을 뉘이면
끝나는 미션이었다.
문제는 화요일, 목요일이었다.
그때 그 화목 스케쥴은 심지어 출근 시간도 늦어서
오전 11시까지만 당도하면 되었다.
어찌됐건, 매일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불태웠다.
“월수금처럼 똑같이 6시에 일어나서
느긋하게 버스를 타고, 전철 3번 갈아타서 가보자.
그럼 좋을거야”
그렇게 수많은 환승을 거치면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그런데?
택시를 이용하면 1시간.
아.....
출근하는 첫날부터 내 의지와 계획은
나로부터 외면당했다.
택시가 1시간이면 간다는데, 아침잠 많은 내가,
그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고 2시간 30분 전에 일어나 착실히 버스와 전철을 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시내버스와 전철은 매우 혼잡했으며
출근 전에 기력을 다 빼기에
매우 적합한 정도의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어떻게 택시를 고르냐” 다그치겠다만, ㅎㅎ 그때 나는..
어찌나 싱싱하고 능력이 좋았던지
택시 탈 돈을 버는 게, 택시를 안 타고 복잡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쉬웠다.
그래도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당시 내 보잘 것 없는 사회적 위치나 기타 등등을 따져 택시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위화감, 죄책감은 확실했다.
그래서
화, 목 상암에 출근하는 그 9개월간
부단히도 애를 썼다.
어떻게든 2시간 30분
그 복잡하고 꽤 많은 노력이 드는 출근길을
견뎌보겠노라고.
그런데 이 의지는 번번히 3회를 못 가고 무너졌다.
나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는
어김없이 화, 목요일마다 나를 무너뜨렸고,
언제나 느린 눈꺼풀에 지는 나에게
“이래놓고 너가 뭘 할 수 있어” 라고 다그쳤다.
음, 지금보면 이유가 강력하지 않았다.
내가 일찍 일어나
2시 30분 버스와 전철을 타야할 이유가.
목적의 부재는 하루를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월수금은 내 생애 가장 괜찮은 사람으로.
화목은 내 생애 가장 별로인 사람으로.
결국 그때 나는 결단을 내렸다.
월수금 나를 품어준 대표에게 이야기했다.
“화요일, 목요일 업무를 그만두고,
여기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매일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환경을
선택한 것이다.
이 하나의 집중이 무엇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한 번의 직통버스라는 단순함이
인생 전체에 필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