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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방탐방

병원에서 드라마의 장면을 떠올리다

슬의생의 장면이 기억난 이유

by 달공원

1년 하고도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입원 병동.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코로나 방지를 위해 입구에 몇몇 절차나 장치가 약간 더해진 정도랄까?

나 역시 상황이 그때와 다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당황스러움이나 두려움 같은 것도 없고, 절절하던 통증 역시 비교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나름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라 한결 차분하고 여유 있게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수술 전날, 내일 받게 될 수술에 대해 의사의 설명을 듣다 문득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어머니에게 의사가 감정을 쏙 빼고 직설적으로 설명을 하는 신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꾸짖는 선배 의사의 모습이 나온다. 생각의 차이, 혹은 사고방식의 차이일까? 의사의 본분은 무엇을, 도대체 어디까지를 요구하는 것일까? 알고 있는 지식으로 위험 상황임을 정확히 전하고, 최악일 경우까지 가정하여 냉정하게 설명하는 것에 분명 잘못은 없다. 하지만 선배 의사가 지적한 대로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희망을 주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만드는 방식 또한 충분히 공감이 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데 더해 따뜻하고, 정의감 넘치며, 헌신적인 자세로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나 간호사의 모습. 그 모습은 그냥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인 개인의 욕심일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화살을 돌려 “넌 왜 그래?”라는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스스로도 그러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실 내가 그랬다. 수술에 대해 설명하는 의사의 설명이 당최 미덥지가 못했다. 다짜고짜 쇄골 주변을 지탱하고 있는 판 주위에 석회가 끼어 있고, 중간에 박힌 육각 나사가 마모되어 빠지지 않으면 그냥 평생 어깨에 끼고 살아야 한다는 직설적인 설명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에 더해 그런 경우가 10에 2~3이란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다. 그런데 “다른 의사들이 이미 그런 설명을 했을 텐데 왜 당신은 들은 적이 없다고 해?”라는 투로 가르치듯 말하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술이 실패할 비율이 20~30%라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만약 어깨 속에 이물질이 박힌 상태로 1여 년을 넘게 불편한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설명이 환자에게 얼마나 공포감을 주는지 쉽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걸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윽박지르는 투로 설명을 하고 동의서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하니 나 역시 따지듯 반응을 하게 되었고, 졸지에 작은 논쟁으로 번졌다. 결국은 엑스레이 사진까지 켜놓고 논쟁? 끝에 서로의 공감대를 맞추긴 했지만 개운치 않은 감정이 여운으로 남았다.


그 젊은 의사 역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건방진? 환자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하고,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다. 거친 말투와 귀까지 빨개진 모습에서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막판에 본의 아니게 목소리를 높여 따진 나의 태도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껄끄러운 감정의 찌꺼기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이 전공의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게 이번에 살짝 터진 것이다. 수술 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협진 진료 일정을 잡아 날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또 "이번 주 금요일에 의사들의 파업이 있으니 토요일에 퇴원을 하시라"는 얘기는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점이 들게 했다. 다행히 그의 상사인 전문의가 와서 수술이 잘못되는 경우는 100의 1~2 정도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퇴원해도 된다고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환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전공의 의사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슬의생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다.


의사나 간호사, 참 어려운 직업이다. 알아야 하는 지식도 방대하고, 또 격무에 시달린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이지만 각양각색의 아픈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 업무는 정말 힘든 일이다. 요즘같이 엄중한 코로나 정국에는 밤낮으로 고생하는 고마운 분들이다. 의료계 전체를 두고 이런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만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나 스스로도 다시 한번,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병원이나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고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지식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진다면 오해나 불신은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예정대로 수술 다음날 퇴원을 했다. 상처가 아물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마무리지어져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다만 반복된 전신 마취로 인해 그나마 몇 안 남은 내 소중한 기억 세포가 또 얼마나 이 세상을 하직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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