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오일 & 가스 쇼 참가기
축적한 경험치 때문인가. 올해는 전시회 참가 준비 과정이 작년에 비해 상당히 매끄러웠다. 적어도 처음에는…… 수개월 전에 설정한 로드맵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다. 각종 전시 관련 사항에 대한 검토와 아이디어 구상은 물론이고, 참가인원들이 미리 전시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생했다.
지난해에 이어 재 참가를 결정했던 듀에슬론 대회준비를 하다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부상 때문이었다. 고장 난 몸 상태로 인해 전시회 준비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마지막까지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출발일, 병원에서 비상 응급 처치를 받고서야 머나먼 출장길에 나설 수 있었다.
지난해에 비해 출장 기간(10박 11일)이 좀 더 길었던 건 최근 수주 받은 프로젝트의 KOM(Kick-off-meeting)을 이 시기로 맞췄기 때문이었다. 워낙 방문이 쉽지 않은 곳이라 고객 측에 양해를 구하고 일부러 일정을 조정했다. 오너 측, MC, 그리고 엔지니어링 사가 모두 참석한 KOM은 엔지니어링 사 본사에서 열렸다. 상당히 호의적인 분위기에다 합리적인 태도 덕분에 의견 조율이 잘 되어 이틀에 걸쳐 진행할 회의 내용을 하루 만에 완료했다. 그 결과 이번 출장의 목적 중 하나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번 출장의 진짜 목표인 전시회였다.
전시회 참가 과정이나 부스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 지원을 받는 국가관 부스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참가하는 우리가 직접 챙겨야 할 사항들은 꽤 많았다. 부스에 들어갈 각종 집기 류나 디스플레이 배너, 제품을 올려놓을 전시 테이블, 조명 등도 일일이 신경 써야 할 사항 중 일부였다. 그래도 첫 번째 일정에서 하루를 세이브한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많은 돈을 투자해 폼 나는 전시관을 만들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없어 보이는 느낌을 주기는 싫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나름 고민했던 결과물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잠시나마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게 시작된 2017년 이란 오일 & 가스 전시회였다. 부스를 지키며 방문 고객을 상대하고, 에이전트와 함께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 상담을 벌였던 치열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제, 2017년 5월 6일에서 9일까지 4일에 걸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펼쳐졌던 2017 이란 오일 & 가스 전시회를 정리하며 개인적으로 느꼈던 바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작년에 비해 생각보다 한가함이 느껴지는 전시장 분위기였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내지 착각일 수도 있다. 체감으로 전해지는 고객 수는 홀의 위치나 주변 업체와의 연관성, 희망 고객과의 사전 미팅 스케줄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듯한 느낌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란 에이전트,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얻은 힌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다는 점이다. 2013년 8월에 취임한 현 대통령인 로하니가 연임을 하느냐 아니면 성직자 출신의 보수 강경파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세계의 정치, 경제판이 심하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곧 이란의 개방정책이 다시 중대한 기로에 설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얼마 전인 5.1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대외 개방정책 및 핵 포기,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기존의 로하니가 당선됨으로써 한 고비를 넘긴 셈이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란의 경제 상황이다. 사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경제제재는 정부 재정난, 인플레이션, 생활수준의 하락, 중산층 붕괴, 30%에 육박하는 실업률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2015년 서방 6개국과의 핵 합의를 통해 경제제재는 일부 해결되었다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미사일 개발이나 이라크, 시리아와 같은 나리들의 시아파 지원 문제로 미국이나 주변국들과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연계되어 직접적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란 시내 곳곳에는 건설작업이 중단된 건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작년 이맘때 내가 보았던 건물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상태다. 대부분 자금 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다. 현재 이란이 처해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작년 전시회 분위기가 시장 개방에 따른 흥분과 기대로 활기찬 모습이었다면, 올해는 한층 차분해진 느낌이 든 것은 아마도 이런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둘째로, 일부 전시회 참가국가들의 대규모 약진을 들 수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서 올해는 유난히 강력한 포스의 몇몇 국가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독일의 국가관 부스들은 통일화와 개별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 프로페셔널 한 느낌이 단연 돋보였다. “역시 독일이구나!”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 독일의 참가 업체들은 국가관과 개별 부스를 합쳐 120개에 이른다. 이는 작년보다 대폭 증가한 수로 국가차원에서 본격적인 시장 복원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유럽의 타국가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도 국가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시장 진출 의지를 나타내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업체의 참가가 눈에 띄었다. 인해전술의 나라답게 200여 개 넘는 업체가 기치를 내건 중국은 숫자뿐 아니라 부스의 크기도 대형화된 듯 보였다. 그에 비해 일본은 약 20개 남짓한 업체들이 국가관 대형 부스를 중심으로 빙 둘러 카운터를 설치해 효율을 높이는 모습이었다.
한국 국가관은 약 40개 정도의 업체가 홀의 가장자리 쪽에 자리를 했다. 중심부에 위치한 독일관과 다소 대비가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독일관, 이탈리아관 등과 함께 위치해 고객 방문 면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대림, 현대, GS 등과 같은 이란 시장에 경험이 있는 국내 엔지니어링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국가관이나 개별 참가를 한 업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최근 대림이나 현대가 이란의 신규 프로젝트 수주 소식을 전했으니, 굳이 전시회 참가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부스 없이 전시회에 참가했을 수도 있을테고......
최근 3년간 한국 참가업체 수를 보면, 2015년 - 8개, 2016년 - 36개, 2017년 - 46개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7~8개 업체 정도가 작년에 이어 다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는 참가 경쟁이 치열해서였을 수도 있고, 투자 대비 성과가 그리 높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이란의 경제 상황이 주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아직도 경기침체와 자금부족 때문에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장비 구매나 교체는 최대한 지연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한 이란 시장은 아직은 희망과 기대, 실망과 불안 요소가 뒤섞여 있는 혼돈의 땅이다.
셋째는, 이란 업체들의 한층 강화된 경쟁력이다.
이란이 모두가 눈독을 들이는 노른자위 시장인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이 주도한 경제제재기간 동안 이 시장은 더욱 부침이 심했다. 2010년대 초반에는 한국업체들이 어부지리로 호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제재가 더욱 강력해지면서 한국 역시 정상거래가 어려워지자 중국과 러시아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웠다. 또한 이는 이란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이란 업체들은 적극적인 영업과 마케팅, 개선된 품질 및 탁월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는 추세다. 이제는 현지 업체와의 경쟁이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정도다. 이들 역시 가속화되는 시장개방에 대비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니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될 듯싶다.
이제 세계의 거대기업들까지 모두 가세하여, 기존 세력들과의 시장 쟁탈전이 한층 불을 뿜을 것이다. 더 적극적이고 기발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절실히 느꼈던 부분 중에는 참여 업체들의 적극성을 꼽을 수 있다. 고객과 경쟁사를 구분하지 않고 적극적인 제휴 방안을 찾아 나섬으로써 회사와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심지어 우리 회사의 강력한 해외 및 이란 현지 경쟁사 담당자들이 우리 부스를 직접 방문하여 다양한 얘기를 나누려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가 없다.” 는 문구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수일간의 출장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 시장, 경쟁사, 전시회, 경쟁력…… 글로벌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 지는 상황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꺼리와 숙제만 한 가득 채워온 기분이다.
끝으로 이란 방문 기간동안 짬짬이 찍었던 몇몇 사진을 공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