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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방탐방

리더의 자질이자 도전자의 조건

윤호일 극지연구소 연구부장의 강연에서

by 달공원

지난 20여년간 극지를 마치 옆집 드나들 듯 방문한 사람이 있다.

윤호일 극지연구소 연구부장. 그는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장 출신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란다.


세미나에 가면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강사는 뭐니 뭐니 해도 첫인상과 첫마디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해 상공회의소 조찬 강연회에서 느꼈던 윤호일 연구부장의 첫인상? 내가 앉은 자리가 강단에서 거리가 좀 있긴 했으나 눈대중으로 보아도 체격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지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강인한 체력은 필수일테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자~ 그럼 목소리는? 낭랑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굵은 울림이 귓가에 전해져 온다. ‘아, 이 사람……내공이 장난이 아니겠구나!!!’


그런데 막상 강의가 진행되자 순간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쳐간다. '어~뭐, 뭐지? 내가 잘못봤나?' 어찌 들으면 아마추어 초보강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프로강사란 생각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정리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을 흔들며, 나름대로의 성대모사(?)도 자유자재로 하면서 열정적으로 펼치는 강의에 절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윤호일 대장은 함께 자리한 수많은 청중들의 눈과 귀를 휘어잡고는 설원의 아름다움과 크레바스의 위험으로 뒤덮인 남극의 세계로 이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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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3개월 정도만 왕래가 가능한 남극은 나머지 기간 동안은 고립무원인 그들만의 세상이 된다 한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고, 싫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되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예상치 못하는 위험이 날카로운 비수를 감추고 도처에 널려 있다. 엄청난 폭풍설과 상상 불가한 극한의 기온을 극복하려면 강인한 체력은 대원 선발조건의 기본이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15명 가량의 동료들과 오랜 시간 부대껴야 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우울증이나 정신 장애와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단단한 정신력 또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20여 년간의 경험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2004년에 벌어졌던 사건이라 했다. 윤대장과 부대원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난관을 헤쳐 나오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당시 15명의 대원 중 과반이 넘는 8명이 살인적인 폭풍설에 조난을 당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폭풍설로 조난을 당한 동료 3명과 그들을 구하러 나섰던 5명의 대원들까지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생사를 다투게 된 절체절명의 상황. 이제 그와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다림과 기도 이외는 딱히 없어 보였다.


아무리 체력이나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는 생존의 한계에 이르는 마의 시간이 4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몸이 발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단다. 남은 것은 그대로 동사하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기적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최악의 상황을 감안한 부대장은 생존의 가이드라인 자체를 더 높게 설정해놓고 대원들을 강하게 이끌었다. 결국 그의 리더십으로 52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사고를 통해 얻었던 깨우침을 윤호일 대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어떤 조직이던 중간간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조직은 중간 간부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죠. 즉, 중간 간부가 조직을 살리는 것입니다.”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두 명의 리더가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그리 많지 않다. 또 리더가 아무리 재촉해도 조직원들이 진정성을 갖고 함께 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중간간부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있다.

“중간 간부들을 움직이게 하라, 이것이 리더십이다.”

그는 남극에서 조직을 이끌면서 깨달았던 리더의 자질이자 도전자의 조건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조건 1. 정직하라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욱 정직하라. 솔직이 잘못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수습하도록 애쓰라)


조건 2.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리더는 모든 사람들을 균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리더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조건 3. 인간미를 가져라 (희생정신을 가져라. 조직 안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나 자신만 앞서 나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여럿이 함께 이루는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간미를 갖추고 대해야 한다)


조건 4. 더 멀리 내다보라 (당장 처한 상황과 주어진 일만 바라보다간 오히려 길을 잃기 쉽다. 멀리 보이는 바다, 즉 도전의 목표와 비전을 잊지 않고, 무엇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라)


크던 작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다 똑같은가 보다.

삶에 두루 걸쳐져 있는 조직이나 환경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기본원칙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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