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와인의 도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프랑스를 향해 있다.
유로 2016 축구 경기가 한창 열기를 뿜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연쇄 테러의 공포와 아픔이 상존해 있고, 몇몇 극렬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경기가 벌어지는 도시가 일순간 무법천지로 변하기도 한다. 게다가 노동법 반대 총파업으로 인한 과격시위까지 겹치면서 국가 전역에 걸쳐 비상경계 태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다. 한바탕 신명 나는 축제가 벌어져야 할 곳에서 이런 상황이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나의 시선을 잡아채는 스포츠 헤드라인은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의 유로 2016 축구 경기였다. 피파랭킹 세계 6위인 무적함대 스페인이 27위인 크로아티아에 최종 스코어 2:1로 발목을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가끔 순위가 낮은 팀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를 꺾으면 이변이라며 시끌벅적 해지는 법이다. 크로아티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한 랭킹 26위인 웨일스도 세계적인 강호들을 연거푸 물리치고 당당히 조 1위를 거머쥐었다. 16강서부터는 또 어떤 스토리를 쓸지는 알 수 없으나 ‘축구공은 둥글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주고 있는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경기를 치른 도시가 보르도(Bordeaux)란 사실을 알고 나니 슬며시 반가움이 밀려왔다. 비록 잠깐의 방문이었지만 강렬한 기억의 흔적을 남긴 곳이었기 때문이다. 3년여 전쯤 회사 출장으로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인 M사가 있는 보르도를 방문했을 때는 꽤 쌀쌀한 날씨의 1월이었다.
다행히 고객과의 미팅은 단판으로 잘 마무리 지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약간의 여유시간을 보너스로 얻었다. 머물던 숙소가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계로 도보로 도시 구경을 구석구석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보르도를 가로지르는 가론강을 건너 시내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도시 곳곳에는 고대와 현대가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 골목 곳곳에 우뚝 솟아 있다.
꽝꽁스(Quinconces) 광장에는 지롱드 기념탑이 있다. 공포정치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로베스피에르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이 광장 근처에는 각종 건축물과 오페라 하우스, 상점, 카페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다. 또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각종 트람과 버스가 지나는 시내 관광의 중심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보르도 성 안드레 성당 (CathédraleSaint-André de Bordeaux)은 12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800년 전에 지어진 이 성당은 섬세함과 화려함을 자랑한다.
또한 보르도 시가지는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어 ‘달의 항구(Port of the Moon)’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역사도시로, 도시와 건축 관련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별도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도 하다.
새로운 곳에 왔으면 맛집을 지나칠 수 없는 법. 같이 했던 독일 친구의 소개로 방문한 스테이크 하우스 L’entrecote.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꽤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했지만 맛난 음식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퐁듀에 곁들인 와인 한잔. 커피에 달콤한 디저트까지…… 아~ 이게 여행의 행복이 아닐까? 유명하다는 마카롱과 카놀라는 선물용으로 조금 구입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보르도는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인구가 24만 명에 불과한 이 도시는 마치 와인의 대명사처럼 불려진다. 프랑스 보르도는 몰라도 보르도 와인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트람과 버스를 번갈아 갈아타고 직접 와인농장 방문에 나섰다.
보르도, 생테밀리옹, 메독, 포므롤, 그라브, 소테른 등 도시 근교에는 다양한 와인 산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트람와 버스로 찾아가는 와인농장 투어는 대표적인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와인의 제조과정을 살펴보고, 시음도 해볼 수 있다.
투어를 마칠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와인 한두 병 정도는 들고 나오게 되는 곳이다.
어느새 주변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석양 속에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평화롭다. 바쁜 출장 일정 중에 잠시나마 이런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소망을 저 하늘로 쏘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