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나이와 체감나이. 흥미로운 내용이다.
젊은 사람은 자신의 실제나이보다 몇 살 더 먹었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실제나이를 적게 카운트 한다는.... 뭐~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구체적으로 보면, 20대는 자신이 실제나이보다 3살 정도 많다고 생각하고, 30대는 1살 더 많게 생각한단다. 그런데 50대가 되면 오히려 2살을 젊다고 생각하고, 60대는 실제나이보다 5살이나 더 젊다고 여긴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나마 40대는 실제나이와 체감나이를 똑같이 생각한다니 나이 문제에 있어 제정신인 사람들은 40대 밖에 없나 보다.
과유불급. 이는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같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쉬운 예로 운동을 들 수 있다. 운동이 좋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문제는 적정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의 체감나이를 실제나이보다 훨씬 더 젊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사실 나 역시 같은 과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즐기던 스타일인데 고질병이 하나 있다. 그건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나 자신과 치열하게 다투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예기치 못한 부상을 자주 당한다.
10대~20대 무렵에는 축구, 야구 같은 단체 구기 종목을, 나이가 좀 들어서는 달리기, 등산, 수영, 자전거 같은 개인 기록 종목을 즐겼다. 그런데 그만 늦바람이 들어 정해진 목표 시간 내에 완주하거나 기록 단축 운동을 죽을똥살똥 하다가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했다.
실제나이를 애써 부정한 체감나이를 굳게 믿고 과하게 운동을 한 탓에 할 수 있는 운동 종목이 하나씩 줄기 시작했다. 이젠 하고 싶어도 더 이상은 할 수 없는 금지 종목이 점점 늘고 있다. 리스트의 맨 위를 장식하고 있는 종목이 달리기와 등산이다. 이게 다 나이를 혼동하여 내 몸을 혹사시킨 덕분이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딱 떨어지는 경우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앞에 ‘과’ 자가 붙으면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너무 많이 먹으면 과식, 술을 많이 마시면 과음, 몸무게가 많이 나갈 땐 과체중,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과욕,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어나는 과로, 신경이 예민하면 과민 등등.
역시 우리의 생활 습관에서도 과유불급, 즉 ‘무엇이든 과하면 안 된다’는 중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렇다면 이 과유불급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이 또한 논어에서 나오는 사자성어로 ‘중도이폐’ 란 말이 있다.
도를 공부하는데 열심이 아니라고 지적을 받은 제자가 “저는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한 것입니다”라고 핑계를 대자, 공자가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가서 그만두는 법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선을 긋고 있는 것이냐”라고 그를 나무라는 대목에서 ‘중도이폐(中道而廢)’가 등장한다.
말 그대로 보면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꾸짖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가 비록 중도에 그만두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괜찮다”는 뜻이다. 공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고 허튼 핑계가 늘어놓는 제자의 태도를 질타한 것이다.
두 사자성어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 우리의 삶에서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괜스레 실제나이나 체감나이 따위는 따지지 말자.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나이 불문하고 각자 수준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갈 때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중용을 지켜야 하는 게 비단 운동만이랴...
문득 어느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