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 인생이 냉장고 같아서.
오늘은 냉장고 정리를 했습니다.
결혼하면서 장만한 커다란 삼X 냉장고, 당시의 최신모델로 남편과 둘이서 신혼생활을 할 적엔 냉장고 크기가 무색하게도 텅 비어있었지요. 남편과 주말에 냉장고 문을 열어, 전날 먹던 배달음식 조금, 간단한 밀키트 정도만 있는 것을 확인하곤, "먹을 게 없네!(혹은 귀찮다!) 샌드위치나 먹을까?" 하며 배달앱을 켜거나 주섬주섬 운동복을 꿰어 입곤 집 앞 카페로 향하던 그때엔 이 냉장고가 아마도 전기세만 축내던 관상용 물건이었건만 지금은 꽤나 저희 집에서 바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려면 항상 신선한 식료품이 충분해야 하기에 그만큼 냉장고 선반도 꽉꽉 채워졌지요. 그래서인지 심플하고 깔끔하던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지금은 냉장고를 조금만 덜 돌보면 이전에 싸서 사놓고 잊은 재료들이나 만들어 놓고 조금 남긴 반찬들 같은 것이 가득해집니다. 특히 안이 훤하게 보이지 않는 반찬통 같은 것들은 주기적으로 꼭 열어 확인을 해야 한다니까요.
냉장고 칸칸을 둘러봅니다. 언제 모르게 유통기한이 지난 딸기 우유 같은 것들은 폐기처분하거나 조금 괜찮다면 제 입에 털어 넣고, 조금 남아 아까워 소분해 두고 잊어 먹지 못한 반찬은 과감히 버립니다. 식료품에서 떨어진 흙이나 부스러기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직은 신선하지만 곧 못 먹게 될 식료품을 활용한 오늘의 메뉴를 구상합니다. 냉동으로 미뤄둔 것들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해요. 얼어있으니 하고 덮어놓고 쌓아놓기만 하면 결국엔 아무것도 못 먹게 되기 십상입니다.
냉장고 정리를 하다 보니 냉장고가 참 저와 같습니다. 인생 초년기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하여 그럴듯한 타이틀을 얻은 커다란 냉장고. 갑작스레 늘어난 식구로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바빠진 나. 그래서 이것저것 그때그때의 나의 희망, 고민, 행복, 기쁨, 슬픔을 밀폐하고 압축해 냉장실 냉동실에 저장하는 나. 그리고 한 때 마음의 여유공간 없이 너무 바빠 저장만 하고 빼어먹지 못해 안에서 시들어가던 나. 이제는 저를 돌보는 것도 냉장고 정리하는 것만큼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 닫고 겉에서 보면 멀쩡하지 않은 냉장고가 몇이나 있을까요. 다들 안에는 자신만의 고민, 걱정, 행복, 희망, 기쁨, 슬픔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문 닫고 밖에서 보면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이 냉장고 아닌가요. 그렇게 보면 열어보기 전까진 다른 사람을 쉽게 연민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안을 정리하는 것은 살림살이에 베테랑인 혹자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미뤄두지 말고, 다만 내 삶의 냉장고를 안에서부터 조금씩 파먹고, 채우고, 정리해야겠어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라는 냉장고를 매일 조금씩 돌보아야겠습니다. 내 안에서부터 충만해지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