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시대가 나를 더 단단하게 합니다.
그때의 삶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벼리는 행위였다.
- 닐 셔스터먼, 『수확자』中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저의 마음에 남은 글귀입니다. 이 문장이 제게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간단한 배경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 소설은 인공지능의 절대적인 진화와 함께 죽음을 정복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는 유일한 사망의 실행자인 '수확자'를 두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사망시대를 돌이키며 ‘시간’의 의미에 대해 기록한 '수확자'의 일기 중 한 문구입니다. 물론 이 문장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 중에는 '시간을 벼린다'라는 표현의 예술성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만, 무엇보다 이 문장이 저에게 특별히 다가온 이유는 저의 삶에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은 후로 나누어 보았을 때, 아이를 낳은 제 삶은 아이를 낳기 전보다 절대적으로 '윤택'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히 '나'만 생각했을 때는 시대적 퇴보에 가깝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의 삶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무한정 채워졌다면, 현재의 삶은 '아이'를 위한 시간이 우선이 되고, '나'를 위한 시간은 중간중간 뭉텅뭉텅 잘려나간 자투리로 간간히 기워 채워나가야 하는 누더기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적어도 '변화' 그 자체만은 '부모가 된다면' 잔인하게도 누구나 경험하게 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런 일기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육아는 큰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합리적으로 돌아가던 내 세상에 '비합리가 정상'이라는 성인의 생각엔 말도 안 되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일이고, 갑과 을이 공존하던 나의 사회적 역할이 슈퍼을로 자리 잡는 과정이며, 내 삶의 윤택함을 가져간 원수를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는 일이다.' (2024년 1월 16일, 일기)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제 삶이 이전보다 행복했고 행복하고, 앞으로도 분명 행복할 것이지만 가끔은 '내가 잃은 것'에 매몰되곤 합니다. 이런 생각은 아주 높은 빈도로 '사랑이 부족해서인가'라는 자기 의심과 죄책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비로소 나의 삶을 '시간을 벼리며' 보낼 수 있다고요. 유한한 나(만)의 시간을 비로소 아깝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고요. 어쩌면 무한한 시간을 가졌던 나만의 시대에 미루고 미룰 일들을 오히려 짬짬이 해낼 동력과 힘을 얻었다고도요. 그러므로 이 글이 쓰인 것도 결국은 아이들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