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다른 의미
2025년의 끝을 바라보는 12월이 벌써 반이나 훌쩍 지났습니다. 산책을 하다 보니 나뭇잎이 다 떨어졌더군요. 가을에 전지작업을 끝낸 나무들이 유난히도 앙상해 보여 괜스레 쓸쓸해지는 겨울 풍경입니다.
나무야 너는 왜 이렇게 뾰족하니? 정말 춥겠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에게도 자신을 투사하는 아이들의 눈에도 헐벗은 나무는 춥고 쓸쓸해 보이나 봅니다. 사람의 인생은 계절과 같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고 하던가요. 한 해에도 눈부신 성장을 한 아이들이 봄 나무라면 저는 아마도 성장을 끝내고 잎을 털어낼 준비가 된 가을 나무쯤 되겠지요. 올 초에 옹알이처럼 한 두 마디 내뱉던 아이들의 말이 이젠 꽤나 길어지고 정확해져 하루 종일 수다 삼매경일 정도로 아이들의 성장은 빠르고 눈부신 반면 저는 변한 것 없이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시간이 참으로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해지자면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항상 좋은 엄마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저의 힘듦을 드러낸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직업이 유치원 교사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엄마로서의 나의 모습에 높은 기준을 세워두었고 이것이 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번아웃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소홀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디론가 훌쩍 떠나도 생각나는 건 나의 봄나무들 뿐이었습니다.
나무야 정말 춥겠다. 내가 안아줄게.
얼어붙은 마음도 속절없이 녹이는, 어쩔 도리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결국엔 그 사랑이 저를 일으킵니다. 눈부신 성장을 한 나의 봄나무들과 함께여서 나라는 가을 나무도 안으로 옹골차지는 한 해를 보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이들 덕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내내 노력할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때론 지치고 힘든 시기가 오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저에게 아이들에게 더욱더 사랑을 줄 수 있는 긴 기간을 유예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엄마가 되었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모를지 몰라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육아(育兒:아이를 기름)의 또 다른 참 뜻은 육아(育我:나를 기름)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