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으로 김재식 Jun 18. 2023

보고싶은 J형에게

‘J형에게’


잘지내시지요?

여기는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고

뜨거운 햇살이 여름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음을

날마다 점점 실감하게 됩니다

기억하시나요?

아주 오래전 기도원 올라 가던 길을?

벌써 40년하고도 2년이나 더 전이었지요.

마석기도원이었던가? 이름이 좀 아련합니다만

그해 여름도 정말 뜨거웠지요?

4명의 청년이 시골길을 걷고 걸어

기도원으로 가던 길에 더위를 먹을 정도였지요

개울에서 발을 담그고 물로 머리를 적시고

버스도 없는 기도원 가던 길

뭐가 그리 재미있고 신나는지 웃고 떠들며

그래도 마냥 행복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때 중요한 기도제목을 안고 간 한 친구를

응원하느라 사흘을 같이 지내주며

밤이면 더위를 식히느라 모기에 물려가며

개울에 씻고 오가던 캄캄한 길도 기억납니다

3일 금식하는 친구를 약올리면서도 진심은

잘 견디고 기도의 응답을 받기를 응원했지요

지금이라면 좀 다르게 표현했을 것 같아요

따뜻한 말과 장난을 줄이고 곁에 머물러줄텐데

그때는 왜그리 치기어린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J형,

생각하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때의 자신만만하던 신심이 그립습니다.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섭지 않고 앞으로 가던 용기가.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고민할 일은 줄었는데

한번 좌절감이 몰려오면 쉽게 털어내지 못합니다

아주 오래가고 후유증도 심해서 침울해집니다

마치 물에 빠졌는데 누가 아래에서 발목을 잡고

끌어 내리는 심정이 들곤 합니다

그때 청년시절에는 어떤 고민도 까짓 며칠 기도로

씨름하면 응답도 받고 이기고 물리치곤 했지요


J형,

믿음의 경력이 늘어나면 더 편안하고

매사 근심이나 일상을 쉽게 흘려보낼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점도 있네요

흔들린 순간들이 쌓이고 자신감도 줄어들면서

무사히 살아서 흠없이 생을 마치고 싶다는

소극적인 소원이 점점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기쁘지 못하고 감사도 힘 없는데

내 모습 내 신앙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해요

거칠 것 없는 푸르고 당당하던 젊은 날의 믿음이

그립기도 합니다. 철부지고 사고뭉치였음을 알면서도…


J형,

가끔은 다시 기도원을 올라가고 싶은 맘이 몰려와요

J형이 알다시피 내 형편이 그럴 수 없어서 더 그러네요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가고 싶으면 가고

행동이 좀 자유로웠으면 하고 속상합니다

산도 가고 기도원도 가고 강가를 산책도 하고

보고 싶은 멀리 있는 친구를 찾아도 가고

그렇게 살 날이 나에게도 올까요?

나보다 열배는 자유를 상실한 아내는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집안에서도 못 가는 곳이 있어

우울해 합니다. 씽크대 베란다 화장실도 못가니…

그 앞에서 나는 입을 닫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침묵합니다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 견딜만 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화가 나기도하고 미칠 것도 같습니다

15년째 장기감옥살이 하는 서러움이 북받칩니다


J형,

이제 곧 장마도 시작되고 그러면 바깥을 나가기가

여러 이유로 불편해지겠지요?

그나마 잠시 걷기운동도 못가는 날이 많을텐데

마음을 잘 다스려야할텐데 사실 걱정도 됩니다

오늘따라 J형이 더욱 보고 싶습니다

곁에 있기만 해도 봄햇살에 녹는 눈같이

내 굳은 심정이 사르르 없어지는 것 같아서요

날씨가 좋아지고 내 속의 구름도 걷어지면

다시 또 연락을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면 어디인들 멀랴’ 하던 리처드버크의

갈매기 조나단처럼 자주 나를 찾아와주기를 빕니다.


- 맑은고을에서 J형을 그리워하는 친구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