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97 - '양귀비'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사람들의 소시적 이야기에는 조금씩 거짓말이 섞인다.

그것도 안하는 사람은 존경스럽기보다는 재미없어 보인다.


"나 소시적엔 읍내에서 최고 미남이었네!"

"애들아, 아빠 어릴 때는 시험만 치면 100점 이었다!"


뭐 그런 정도는 과장을 해줘야 옛날이야기가 좀 재미있지 않나?

좀 심하게 나가서 '맨손으로 호랑이 때려잡았다!' 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낚시꾼의 놓친 고기가 송사리에서 팔뚝만해지고

끝내 갓난애 키 정도까지도 날마다 자란다는 과장에 비하면 약과다.


"나 예전에 검정고시 공부할 때 학원에 참 착한 여자가 있었다.

한번은 삼복더위 때 작은 자취방에서 땀 뻘뻘 흘리며

국수랑 오이 채 썰어서 냉국 만들어 주던 기억이 지금도 안 잊혀져!"


아내랑 아침밥 먹다가 나도 모르게 나와 버린 과거사.

아차! 싶어 대여섯 명이 갔었다고 얼른 덧붙였다. 사실이지만,


"나중에 딴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나를 참 좋아 했었다네?

난 그것도 모르고 내 생활에 치여 바쁘기만 했는데.

같이 어울리던 학원친구랑 결혼했다는데 소식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좀 불편했다.

그런데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표였다.

나도 잘해주었고 외롭던 생활에 든든한 가족 같았다.

그러다보니 그 친구만 나를 좋아한 게 아니고 나도 좋아 했던 것 같다.

곁에서 나랑 맺어주려 애쓴 사람도 있었다.

당시에는 나는 독신고집에 빠져 있을 때라 될 리 없었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지난 시절이 참 고맙다. 지금은 더 고맙다.

이런 이야기 듣고도 화도 안내는 착한 아내가 있으니 나의 행운이다.


양귀비 – 남의 나라 여인네가 뭔 소용? 곁의 아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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