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98 - '아내의 자리'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이른 아침 깊은 한기가 몰려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꿈이었는지 생각의 잔상이었는지 애매한 채.

아내가 내 곁을 떠나고 세상에 없는 빈자리가 되었다.

날마다 아내가 누워 있던 병상 침대에는 하얀 시트만 있고

날이 밝고 해가 져도 그대로 빈자리만 남은 무서움이라니,

침묵만이, 그늘만이 그 시간과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어디를 나가도 어디 가냐고 귀찮게 안하고,

나갔다 돌아와도 왜 늦었냐고 묻지도 않는 심심함

더 이상 이거 저거 해달라고 밤중에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에 바쁘고

나와 아내를 알던 사람들도 자기들의 인생에 바쁘고

온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아내가 빈자리,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하늘이 서러웠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병 든 몸뚱이조차 눈물 나게 그리워진

이 빈자리는 너무 슬프고 너무 아프고 너무 조용하고...


비몽사몽 철렁 무너진 가슴안고 허우적거리는 팔에 뭐가 잡혔다.

보니 병상 침대에 아직 잠이 든 채 쌕쌕대는 아내가 있었다.


아, 다행이다! 그 많은 쓸쓸함들이,

그 깊은 적막과 그 넓은 빈자리들이 모두 꿈이나 이유모를 환상이었다니...,


다시는 아픈 몸으로 나를 귀찮게 하는 아내라고 부르지 않고,

다시는 근심과 걱정의 덩어리라고 생각지 않기로 했다.

희귀병도 괜찮고 짐 덩어리, 일 덩어리도 괜찮고,

여차하면 숨만 쉬고 있어도 곁에 있어만 주어도 괜찮다.


아내의 자리 – 부부는 반쪽 두 개가 모였다는데 아내는 9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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