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어줄 ‘한 사람’ 있나요?

by 희망으로 김재식


딸아이가 오랫만에 올라왔다.
방학 시작하고도 이런 저런 할일이 많아서 오지 못하다가
마치 군대간 아들들이 휴가 나오듯 사나흘 지내러 왔다.
마중나간 기차역에서 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밀린 이야기 듣고싶어
이것저것 묻고 재미있게 놀린다고 대꾸하다가 또 핀잔을 들었다.
갈수록 아이는 예민하고 신경질도 잘 내고 사납기조차 한다.
“내가 늙어가고 힘 없다고 그러는걸까?
자기가 돈도 버는 자신감이 늘어간다고 그러는걸까?”
별 생각에 서운함이 오기도 했다. ‘못된 딸내미! 지가 혼자 어른되었나?’

하지만 나도 안다. 아이가 나를 얼마나 의지하고 고마워하는지도.
지난번 심장부정맥으로 새벽에 응급실 갔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했었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정말 3초도 지나지 않아 눈물을 펑펑쏟으며 울었다.
그렇다고 소리를 내면 내 가슴이 덜 아팠을지 모른다.
소리 한마디 안내고 꺽꺽 참으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며 울었다.
아차!싶어 달랬더니 그런다.
‘아빠 아프지마... 오래 살아야 해!’
나는 그저 있었던 일 알고 지내자고 아무 생각없이 했다가 호되게 애먹었다.
곽휴지에서 몇번이나 티슈를 꺼내 눈물 콧물을 닦아주며 안고 달래느라.

아이가 가방이랑 선물 몇개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학교에서 지내느라 못왔던 엄마의 생일을 늦게나마 축하한다며.
그리고 앞뒤로 가득 채운 편지 한통도 같이 종이백에 같이 들어 있었다.
지난 해 힘들게 보낸 학기와 요즘 이런저런 심정을 참 자세히도 적었다.
자기도 멋적었는지 ‘생일축하한다고 쓰면서 내 하소연만 늘어놓았네? ㅋㅋ’ 했다.
얼마만에 받아보는 아이의 편지인지 반가웠다.
중고등학교 끝나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끝난줄만 알았는데 고맙게도 아니었다.
비록 그림일기도 아니고 효도할게요 하는 초등학생 스타일도 더는 아니지만.
인생에 대한 고민과 친구나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겼다.
그런 심중의 말을 들려주는 아이가 고맙고 가족을 확인하는 것 같아 기뻤다.
엄마 아빠가 있어서 너무 좋단다. 많이 힘을 내고 위로가 된단다.
이게 얼마나 큰 효도인지 아이가 알고 했을까?

퍼뜩 한 생각이 스쳤다.
‘그래, 세상에 한 사람 정도는 신경질도 받아주고 넉두리도 들어줘야지!
일 안풀리고 고민이 몰려오면 짜증도 내고 엉엉울기도 할수있어야지!’
그 한사람이 나였다. 그 한사람으로 나를 정해준 딸아이가 고마웠다.
하나님도 그런 심정일까? 이유도 안되고 변덕부리며 온갖 투정을 부려도 들어주고
시도때도 없이 고민하고 근심으로 한숨푹푹쉬어도 기다려주는 마음이.
그 한 사람이 되어주기로 하신걸까?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아빠같은 분으로!
깜박 억울하다며 밀어내버릴까 했던 딸과의 사이가 안정이 되었다.
남들에게는 함부로 내색하지 않는 온갖 못난 마음 다 보일수록 더 가까운 사람으로
단단해지는 ‘그 한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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