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쏟아지는 비를 보기도하고 맞기도하고 듣다가 잠이 들기도하고...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를 찾는 반가운 소리를 가끔 들으면 잊혀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잊혀지는 서러움을 힘들어하고 어떤이는 삶의 의욕을 접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묻고 돌아보고 어울려 살게 만들어진 존재들이 맞나봅니다.
그러니 누군가 제가 살아있는지 생존확인을 해주시면 많이 고맙지요!
오늘은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UN에서 해마다 세계 157개국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라는 것이 있답니다.
그 속에 ‘자기의 삶을 선택할 자유’ 라는 설문 항목이 있는데
이 항목에서 한국은 144위를 했습니다. 157개국 중에 144위...
그 앞뒤로 알제리 예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이 있고 비슷한 순위랍니다.
스스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쩌면 나중에 후회할 삶을 산다는.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본인이 원치 않은 미움을 받아 팔려가고 하지 않은 누명으로 감옥살이를 하지요.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을 순종하다가 나중에 온 가족과 민족을 구하지만.
욥도 또한 본인의 선택은 끼지도 못하고 결정된 시험대에 올라 죽을 고생을 합니다.
가족들 잃고 파산하고 버림받고 오해를 당하며 병으로 죽을지경이 되도록 고생합니다.
해피엔딩은 겨우 끝 부분의 몇줄이 보상처럼 주어지기는 했지만.
목수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제자들도 모두 선택보다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마음보다 주어지는 삶을 받아들이는 편이지요.
순위를 매긴다면 157개국 중에 아마도 157등이었을겁니다.
그러나 정말 그냥 꼴찌만이기만 할까요?
비록 설계하고 골라서 선택하는 권리는 포기했다고 해도
그 157등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 어쩌면 1위로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모두 그 길을 가지 않는 현대 신앙인의 모습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그러고도 잘 살고 복이라고 떵떵거리고 자랑하면서 일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주어지는 불행과 고통의 생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건 가장 치열한 선택입니다. 원망과 절망과 포기를 할 수도 있는데도 안 그러는 선택.
왜그럴까요? 짧은 이생의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긴 행복을 믿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가를 치르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거지요.
‘세계행복보고서’ 를 작성하는 ‘자기의 삶을 선택할 자유’ 라는 항목이잖아요.
그 기준에 가장 어울리는 1등 선택을 하는거지요.
주님이 가르쳐주고 보증해주는 권유에 따르는 신자들이 복있을겁니다.
지금 좀 외롭고 근심에 허우적거리지만 오늘도 견디며 달래며 넘깁니다.
오직 그 이유, 그 믿음, 그 기쁨을 확신하기에 그 날을 그리워하면서요.
잠잠히 침묵하며 좀 가라앉아 보내려던 참이었는데
저를 불러 보자며 깨우는 분이 있어 이렇게 또 주절거립니다.
속에 담고 품고 살아야 싹이 날텐데... 다 날렸습니다! ㅎㅎ
그래도 고맙습니다! 모두 행복한 삶을 선택하시고 행복을 기다리며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