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지마라 목사는 더욱...
나에게는 목사가 되어서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사람들을 뒤에 데리고 심방을 다니는 대신 작업복에 3D업종인 영업택시 운전을 하는 동생이 있다. 이 동생이 몇년째 교회 강단에는 안서더니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에 말씀을 전하러 가서 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보는 동안 머리끝이 쭈뼛했다. 무서웠다. 이게 얼마나 심하게 무서운지 아우님은 알고 하는지 궁금했다.
나도 처음에는 아우님이 성품이 여리고 한국개신교 교회 안에서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양심이나 감성에 충돌이 나서 그걸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몸으로 떼우고 먹고 살아도 자유롭고 자존심 유지하며 살겠다는 순수파 정도로 짐작했다. 그것조차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단인지 알지만. 그런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아니, 3:7정도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예수님은 성전에 안계십니다!”
이게 무슨 폭탄 선언일까? 한국개신교 유명 교단에서 안수받은 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그리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버리고 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재우고 밤 늦은 시간 노래방 도우미로 나와 한 시간에 5만원이라는 큰 돈을 버는 속 사정을. 그 큰 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러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못할 대가를 치러야 할지 짐작이 선하다. 사람들은 하기 쉬운 말로 그 마음이면 낮에 떳떳한 일을 하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를 돌보다가 재우고 나서 일을해야하는 마땅치 않은 현실에 하는 선택이라며... 그리고 동시에 성경속에 나오는 어린 아이가 죽은 과부의 이야기를 옆에 비유했다. 측은히 여긴 예수님의 마음과 자비를.
그때야 난 알았다. 그 아우가 목사의 자리인 교화를 나와 택시 핸들을 잡게한 하나님의 의도를. 그건 성경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 동화가 아니라 지금도 똑같이 일어나고 그러니 여전히 예수(아니면 닮겠다고 신앙고백하는 예수의 제자들이)가 어디서 어떻게 일 해야하는지 오늘의 문제라는 걸 아우 목사를 통해 전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보다 더 중요한 선택의 이유를 알았다. 그런 종류의 화려한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부지기로 많다. 온갖 부흥사와 소위 겉 멋 든 목회자와 지식인 목사 등... 하지만 누구도 절대 흉내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하나님의 의지는 아우 목사가 딱 맞다. 슬프고 여린 감성으로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는 성품. 그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 당연히 말이나 글로가 아니고 삶으로 보여주고야 하는 권유는.
아마도 아우는 모를거다 아우 최목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 신앙인과 특히 목회자들을 괴롭게 할거라는 것은.
“예수님은 누구일까?”
“예수님은 누구일까?”
“예수님은 누구일까?”
“예수님은 누구일까?”
몇 번을 그렇게 질문하고 뒤에 붙인 한 마디.
“예수님은 성전안에서 백성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세속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알까?
그 말이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지를,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처럼 우리의 삶을 만만치 않게 불편하게 만들거라는 걸...
나는 진짜 아우 목사가 무섭다.
내게 뭐라고 말할까봐.
그리고... 격하게 반성한다. 나의 짧았던 판단과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