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수 있는 일이지>
치료중에 임시로 해놓은 어금니쪽 치아2개가 양치질 중에 빠져버렸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번거롭지만 부랴 택시를 타고 치과로 가야했다. 그럴 수 있다고 치과에서도 미리 말해준 것을 보면 나만 아니라 더러 그러나보다. 그럼 뭐 세상에 나에게만 생긴 엄청난 불행은 아니다.
‘쿵!’
며칠 전에는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려고 후진하다가 그만 세워둔 차 모서리를 박고 말았다. 차 철판이 그리 약한지 몰랐다. 움푹 들어가면서 찢어졌다. 딴 생각에 잠겼던게 원인이었다. 30년 운전에 3번째 접촉사고. 십년에 한번 꼴이다. 한번도 사람이 다친 적 없어 다행이라고 위로삼아야할까?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숱한 보험회사들과 자동차 정비소들이 기업을 유지하고 돈을 버는 것을 보면 나만 뭐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바로 보험접수하고 상대차주께 죄송하다고 전화로 사과했다. 문제는 내 차 수리다. 차 나이가 많아 보험회사에서 자차보험은 가입안해줘서 전액 본인 돈으로 수리해야 한다.
정비소에 맡겨놓고 걱정 자책 후회로 잔뜩 무거워있는데... 대구의 아는 분이 수리비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보내오셨다. 세상 누구에게도 말 안했고 유일하게 아는 아내가 모아둔 비상금을 조금 보태겠다고 내놓은 상태였는데... 차는 아직 정비소에 있지만.
‘있을 수 있는 일’
소설가 박완서씨는 남편과 아들을 한 해에 하늘로 보내고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때 그 무기력한 절망에서 건져낸 한 질문이 있었다. ‘왜 나만 아니어야 하는데?’ 세상의 숱한 불행에서 왜 나만, 왜 우리 가정만 예외여야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만 털고 일어났다.
나와 아내, 아이들, 우리 가정 앞길에 들이닥친 희귀난치병의 불행이 폭풍같이 많은 것을 빼앗아 갔고 아직 진행중이지만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더 심하거나 덜한 불행도 안고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러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무렴 이런 분들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오랜 악순환의 요셉과 졸지에 당한 욥과, 조금 비겁해도 평범한 생을 살 수 있는데도 순교의 길을 간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바울, 무참히 죽어간 모세 시대의 사내아이들, 예수 탄생때의 살륙당한 아기들과 그 부모들에 비교할 수 있을까? 죄 없이도 온전히 생명과 삶을 바친 예수는 또 어쩌고...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앞으로도 작고 큰 속상할 일들과 긴 어둠의 곤란한 삶을 주문외우듯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야겠다. 왜냐하면 사실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가니까! 줄을 지어 몰려오는 ‘있을 수 있는 일’들에 계절이 보탠다. 여러 생각과 감정과 감사를 안고 걷는 아침 운동길에 낙엽들이 길을 깔았다. 묘하게 좋을수도 쓸쓸할수도 있는 11월말의 늦가을 분위기. ‘있을 수 있는 계절의 경계선’을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