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by 희망으로 김재식



길을 걷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많은 바램들 중에서

걷는 것 하나를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는 사람은 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때도 없이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때론 자기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나도 길을 걷고 싶습니다.

형편이 안되는 오늘은

마을 뒤를 돌아 그냥 아무데라도...


위의 글은 10년쯤 전에 일산에서 쓴 어느 날 일기입니다.

그날도 두어 시간을 족히 헤매다시피 걷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썼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오랜 병원생활을 그런대로 잘 견뎌온 이유 중 하나가 걷기였습니다.

그 덕분으로 아주 열악한 간병인의 환경에도 십 년을 넘게 살아냈습니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라. 그것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했다는 권유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상을 열심히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종착지를 향해 걷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을 순례자라고 말하고 인생길을 순례길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길을 걸으며 살고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시간의 길과 땅의 길과 하늘의 길을 동시에 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는 것과 걷는 것은 하나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예수님 제자들과 초대교회 전도자들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삶, 구원의 방법을 알리는 길은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본인도 걷고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살다 가셨으니.


저를 조금 아는 분들은 제가 늘 “산티아고 순례길을 죽기 전에 갈거야!”

노래 부르듯 소원을 비는 것을 압니다.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아내도 아프기 전 그 길을 같이 걷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신앙의 순례로 끝내고 싶었는데 하늘이 허락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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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그 소원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2002년에 ‘아름다운고행, 산티아고길’이라는 소책자를 만났습니다.

늘 빌려보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책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을 쓴 분은 홍익대 미대를 나오신 남궁문 화백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중 최초로 그 길을 4번이나 걸었을 겁니다.

(그 남궁문 화백님이 어느 해 눈 펑펑 내리는 12월30일 밤에

청주에 있는 우리 병실로 문병을 와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다 2005년쯤인가? 도보여행가 김남희씨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실시간 쓰는 블로그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걷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열흘 넘게 병원 신세를 질 때는

안타까운 회복 응원의 댓글을 올리며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 해에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 한국인은 단 3명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이 수백명, 수천명입니다.


그 김남희씨는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보면서 그 길을 알게 되고 도전을 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충주시립도서관으로 가서 ‘나는 걷는다’ 책을 빌려왔습니다.

3권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밥 먹는 시간 일하는 시간을 빼고 종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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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관한 책과 저자소개는 이렇습니다.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0여 년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정치,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숨 가쁘게 살아온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리고 예순이 되었다. 아내의 죽음, 자식들의 독립, 고독 그리고 마침내 사회로부터의 폐기 처분……. 이 모든 나락으로부터 그를 구한 것은 걷기였다. 1997년 그는 성聖바올로의 유해를 모신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향하는 2325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배낭을 메고 걷는다. 이후 철저히 고독한 도보여행자로 4년에 걸쳐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으며 다만 눈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세상을 흡수하며 전진하는 자유를 누렸다. 예순 이후 시작된 그의 진짜 인생은 도보여행을 통해 비행 청소년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는 ‘문턱’ 협회의 탄생으로 또 하나의 충만함을 얻었다.]


그 3권의 책을 읽으면서 걷기여행에 대한 꿈과 기대는 더 커졌습니다.

베르나르는 60세에도 12000KM 실크로드길을 걸었는데 산티아고 길 정도야!

그들을 생각하며 지난 여름날 일기를 다시 읽어봅니다.

나의 일상은 하루를 열심히 걷는 삶입니다.

그것이 나의 예배고 나 자신이 그 예배의 산 제물이라 믿었습니다.


- 오늘 나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집사람이 밥 대신 먹을 죽을 사러 총총히 걷는다.

찌는 날씨와 습한 바람에 불쾌지수가 조금 오르는 걸 느낀다.

들어선 죽집은 에어컨도 안 켜고 선풍기만 돌고 있다.

투덜거릴까 하다가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보니

그만 말이 쏙 들어간다.

‘저 안은 얼마나 더 더울까?...’

오늘 주일예배 때 읽은 성경구절이 자꾸 머릿속을 뱅뱅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영적예배니라 -로마서12:1‘

어느 도시락 나눔을 하시는 목사님이 하신 말,

스무 집을 배달하는 한 시간 반이 또 다른 예배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시간 시간이 다 예배다.

누군가의 짐을 거들어주거나,

아픈 사람을 위로하러 가는 발걸음이나,

깨끗한 먹거리를 위해 땀 흘리며 농사짓는 일,

튼튼한 집을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일,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마음으로 산다면...

주일마다 건물에 모여 목회자와 신도들이 절도있게 드리는

그 예배와는 또 다른 몸으로 드리는 영적예배...

성경 어디선가는 하나님이 이 영적예배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마음 없이 드리는 수천의 양과 염소를 가증하다고 화내시기도 했다.

나의 오늘은?

나의 산 제물은 어떤 상태로 드렸나?

나의 입술은?

나의 행실은?

나의 심사는?

..................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이 더 무거워질뻔했는데

다행하게도 한 음성이 들려왔다.

‘야 그래도 니는 종일 내 생각만 하니 받아줄 만 하데이!

저기 부처나 큰나무도 아니고,

돈도 출세도 아니고 내 생각만 하니

그런대로 안 밉다카이! 기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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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변함없이 나는 걷습니다.

병들지 않게 내 몸 돌보며 안 죽고 버텨야 아내를 살리고

아이들에게 짐을 안 넘기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를 돕고 응원해오신 분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이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사는 것이 마지막까지 순례길을 가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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