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31 - '기억'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뭐해?“


낼모레면 개학하는 고등학생 막내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냥 이것저것 미안한데 내놓고 말은 못하고 엉뚱한 말로 돌려서...


"그냥..."

"그냥이 뭐야?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며 멀뚱히?"

"아빠는 뭐해?"

"배고파서 컵라면 먹으려고"

"살찐다. 아빠, "


본론은 다 숨기고 그렇게 끊었다. 돈이 쪼달려 장도 조금만 보자고 했고, 머리가 산발이라 스트레이트 펌을 하고 싶다는 것도 ‘다음에’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사실은 그게 미안했는데...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컵라면이 익는 동안 창밖으로 인적 없고 차들만 가득 찬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인다. 이곳에서 저곳을 바라본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봄가을, 봄가을, 그렇게 3번이나...


- '아내가 회복되어 이 병원생활이 끝나면 나도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열심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날이 올까?'


때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별반 쉽지도 편치도 않다.

그래도 내 마음대로 죽고 사는 걸 결정하는 건 무언가 열심히 사는 분들에게 도저히 미안한 일이라고 슬며시 거두어 들였다.

그 대상 중 가장 첫 번째는 아프면서 버티는 아내.

두 번째는 억울한데도 원망 한마디 없이 견디는 아이들...


오늘도 은혜로 하루가 마감된다.


기억 -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모든 것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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