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배우자, 부모에게 드리는 박수>
21세기 한국에 사는 눈물의 예레미아 선지자 급, 여왕을 안다.
수시로 남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물흘리며 기도를 하시는 분.
이게 무슨 대단한 이야기라고 통화하는 중에도 눈물로 들으셨다.
“저는 세상의 가장, 배우자가 되는 결혼을 하신 분들,
그래서 부모가 되어 가정을 유지해가는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 말을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중에.
나는 결혼을 정말 안하려고 했었다. 아니,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두어번이나 알고 지내던 여성들이 결혼 비슷한 단계로
가는 말을 꺼내거나 그 상황으로 진행이 되면 중단하고 헤어졌다.
내가 혹시 천국을 못가고 지옥을 간다면 그 상처를 준 죄 때문일거다.
도저히 가장이나 부모로 평생 그 숙제를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에
독신으로 살고 싶었고, 그 꼴이 누추해보일까봐 수도원 같은 곳에
들어가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꼬라지가 싫었는지 나를 흔드셨다.
순전히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도록 마법을 걸었다.
스스로 새벽기도를 백일 가까이 하면서 좋은 배우자를 그리게 하고
아내를 같은 직장에서 만나자 한달도 안되어 첫 데이트를 신청하게 했다.
하필 그 날이 만우절날이라 거짓말인줄 알아 한번 바람을 맞았지만
다음날 만난 첫 데이트에서 세시간의 대화끝에 청혼을 했다.
물론 당연히... 거절을 당했다.
아내는 상식적이고 갓 스물이 넘은 정상인 사람이라 그랬다.
그러나 다음날 만난 두번째 데이트에서 아내는 청혼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가장이 된 나는 이제와 돌아보니 아담이었다.
원치도 않는데 불쌍히 여긴 하나님이 아담을 재우고 갈비를 취해
그 배필인 하와를 만들어 곁으로 보내신거다. 물론 아담은 좋아했다.
혼자 산다는 내게 어떤 방법으로 눈을 가리고 잠결로 만들었는지...
아마도늙고 병들어 혼자 고독사를 하는 미래를 보셨는지 모른다.
눈물의 여왕도 들으면서 그렇게 예상을 했다.
‘그렇게 안했으면 어쩌면 지금쯤 고독사?’라고 웃으셨다.
나는 부모님의 사정때문에 열네살때부터 서울 남대문시장의 극한
종업원(그때는 점원이라고 불렀다)생활을 시작했다.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의 찬 마루바닥에 세명이 웅크리고 사는 숙식으로.
그 이후 만만치 않은 숱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존과 독학의 세월을 살았다.
그렇게 수십년 이어가면서 나는 결혼, 가정, 자녀 뭐 이런 단어를 밀어냈다.
나 한몸 생명도 이어가기 힘든 경험을 하면서 무슨 그런 책임못질 일을...
그런데 하나님의 조작(?)덕분에 스스로는 못했을 길을 걸었다.
예쁜 아내와 더 사랑스럽고 더 예쁜 자녀들과 사는 생활도 해보았다.
덜컥... 아내가 몹쓸 병이 걸려 뒤끝이 고단하지만 그래도 고맙다.
내가 못 가볼 행복한 길을 가게 해주신 하나님이!
아니면 그대로 혼자 떠돌다가 혼자 쓸쓸한 소멸의 길을 갈게 뻔하니까.
더구나 어찌어찌 남편으로 아픈 아내를 배신하지 않고 살게 해주셨다.
자청해서는 못할 배우자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 어렵게 느끼고 손사래를 치던 결혼한 배우자의 길을 말이다!
며칠 전 아픈 피난살이중에도 못버리고 끌고 다니던 기록물 물건을
모두 버리고 폐기하는 과정에 막내 딸아이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보았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을 떠돌게 된 2년차, 초등학교 5,6학년.
부모 대리인을 자청해주셨던 선생님과 주고 받은 2년치의 연필일기를.
많은 페이지들을 보면서 나는 듣지못하고 보지 못했던 생활을 보았다.
마치 지나간 흑백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보듯 회상이 되었다.
선생님의 답글에 감동하고 아이의 숱한 감정, 생각들을 새삼 발견하고.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는 그 중의 한 페이지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보일러도 고장난 컨테이너 집에 혼자 자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이가 종종 겪고 느꼈을 외로움과 숱한 부모가 필요했을 순간들이
딸아이를 얼마나 더 어두운 구석으로 몰았을까 가슴이 저려왔다.
‘뭐 사줄까?’ 묻는 말에 가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아이의 대답.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 아무 필요한거 없어. 언제 돌아와?’
그 심정이 일기장에 적혀있었고 선생님은 위로하는 답을 달았다.
그럼에도 세명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한 맺힌 원망이나 미움이 없다.
자기 길을 알아서 잘 가주고 큰 걱정이나 속상할 일탈을 하지 않았다.
그 어렵게 생각하던 부모노릇보다 열배는 망한 부모가 되어 버렸는데도 ㅠ
그러니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은 대단하다. 무슨 슈퍼부모가 아니라도.
아주 죽을 비난을 받지 않을 정도만으로 자녀들과 살아주어도 그렇다.
부모가 생존을 책임지고 곁에 있어주는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데.
티걱태걱 싸우고 속을 긁으면서도 배우자로 몇십년 살아주는
배우자 자리를 지키는 일도 그렇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을 모델로 비교하면 모두 허당이 되어버리지만
최악의 상황을 만들거나 악해져서 고통을 부르지만 않아도
남편으로 아내로 자리를 채워주는 모든 배우자는 큰 숙제를 잘 하고 있다.
그거 쉽지 않다. 나의 아픈 아내는 늘 미안해서 종종 운다.
그 당연한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자책때문에...
우리는 모두 어느 날에는 맞이할 것이다.
어떤 길을 걸어왔던지 한사람도 피하지 못하는 마지막 날, 마지막 자리를.
어쩌면 지나온 날보다 맞이할 그날이 백배 만배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꾸만 지난 날과 지금의 사정이 전부인것처럼 마음을 빼앗긴다.
가끔은 나중에 맞이할 날을 기억해야한다. 그 날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것도.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감사했는지를.
나는 오늘밤이나 내일 그 마지막을 맞이하더라도 후회없다. 감사하다.
예전 까마득 힘들어보였던 배우자와 가장, 부모의 숙제를 어느 정도
스스로 대견할만큼 잘 살아온 것을! 다 내 힘보다는 바깥의 도움덕분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오늘이 조금은 평안해진다.
또 무슨 힘든 일이 조만큼 앞에서 날 비웃으며 기다릴지라도...
*사진1은 초등학교6학년 때 혼자 살면서 쓴 딸아이의 일기
*사진2는 그 일기에 위로의 답을 써준 고마운 선생님의 댓글
*사진3은 시험 망친 소감과 나를 감동시킨 딸의 말.
(맨 아랫줄이 잘 안보이지만...그 내용은
‘참고로 아빠는 한번도 날 때린 적이 없다!’라는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