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다리가 누리는 자유는

by 희망으로 김재식



어느 찬양자가 이렇게 노래하더군요.
‘자유는 더 잃을 게 없는 상태’라고.
저는 이어서 생각했습니다.
‘자유는 더 가지고 싶은 욕심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어느 날 몸의 지체들끼리 불평 섞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팔은 온갖 힘든 일을 거의 자기만 이용해서 너무 힘들다 하고
다리는 어디 가거나 종일토록 서있는 날도 많다고 불평했습니다.
둘은 심장을 보며 재는 맨 날 늘 중요하다고 보호와 관심받으며
우리가 힘든 일 할 때도 거들지도 않는다고 흉을 보았습니다.
심장이 가만 생각해보니 미안도 하고 앞으로도 달라지기 힘들어
쓸모없는 자기를 비관하면서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잘난 팔 다리도 그날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준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합체한다면 당신은 심장해 난 팔다리 할께,
사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분담해서 살잖아."

아내는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사는걸 미안해하고
늘 마음에 걸려하는걸 나는 종종 눈치를 챕니다.
어쩌면...그래서 더욱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더 중요한지 몰라!
난 팔다리고 당신은 지금 내 심장이야!
사람이 팔다리는 없어도 살지만 심장없이는 못살아.
당신은 나없어도 살 수 있어, 팔다리 노릇 해줄 병원도 있고,
그러나 난 당신 없으면 못 살아! 심장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먼저 가면 난 인공심장이라도 있어야 살아갈수 있을거야.
내 손으로 따라 죽을 수도 없고...미리 양해를 구하니 용서해줘”
팔다리로만 살수는 없어서 나중에 새 심장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내는 웃기만 했습니다.

'당신은 남의 도움 없으면 꼼짝도 못하니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불행한 사람도 있어.
단 한 번도 사랑하거나 사랑받아보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
팔다리 멀쩡히 다 있어도 원망만 가득한 채 산다면
누가 더 불행한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어?”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팔다리가 멀쩡한 것 만으로 행복여부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여러 길이 있습니다.
몸은 망쳐도 영혼은 망치지 못하는 것에 두려워말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몸 때문에 영혼도 망치면 우리는 사탄에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며 “보세요! 여기 있습니다!” 할까요?
몸은 망쳐도 영혼은 망치지 못하도록 각종 불행에도 동행하시며
세상의 죽음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냐고
찌든 표정대신 감사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살아야 겠습니다.

"...근데 난 어디서 이런 지혜로운 말이 잘 나오는거야?"
하며 말했더니 아내는 싱겁다는 듯 웃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한번 씨-익 웃어줘야 내가 안 민망하지.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살기는 했고? 라고 따지면
사람 피곤하고 민망해지지!” 했더니 한번 더 웃었습니다.
...어째 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웃는 건 무슨 이유지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웃는걸까요?
뭐, 팔다리는 원래 심장보다 생각이 없기는 합니다만! 흐흐

아내의 자유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데서 나옵니다.
제 자유는 제 심장이 되어버린 아내 외에는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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