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친구가 병원이 코로나 전염병때문에 일체 문병이 금지되고
면회는 고사하고 환자와 보호자도 바깥 출입이 통제되면서 아쉬워했다.
그래서 통장으로 간간히 치료비에 보태라고 송금해주기도 하고
올때마다 한박스씩 사서 들고 오던 과일을 못먹을까봐 택배로 보내왔다.
그런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귀한 불루베리와 자두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먹는 속도보다 종류도 여러가지고 양도 많아서 채 따라가지 못했다.
곰팡이가 하얗게 피고 곪아 문드러져 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씽크대로 봉투에 담아가서 흐르는 물에 씻어가며 골라내었다.
상한 것을 골라내며 먹을만한 것은 가려서 씻으면서 알았다.
서로 부딪히거나 작은 포장재 안에서 충격으로 멍든 것들이 썩는다는 걸.
그리고 그 썩은 것 하나가 주위에 닿는 여러개를 가장 먼저 상하게 했다.
멍들고 상처 받은 것에서 한 자리 건너 있는 것들은 비교적 멀쩡했다.
하나가 곰팡이 핀 주위로 대여섯개씩이 물러가고 있고 전염되고 있었다.
아... 과일이든 사람이든, 혹은 인생도 그런가보다.
상처받고 멍든 자리부터 썩어가고 그 주변을 또 상하게 만들어가는 법칙.
그러니 가족중 누군가 한명이 자살을 하면 모든 가족이 우울해지고
또 병이 깊어질 위험성이 높아진다거나, 공동체중에 누군가 지독한 비관주의,
또는 부정적 불신의 말을 습관적으로 해대면 전체가 상할 염려가 높아진다.
반대의 상태, 건강한 것이 상한 것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상하고 멍든 무엇이 주변을 같이 썩고 망하게 만들기는 너무 쉽다.
그리스도인이 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간절히 권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러지 못해도 적어도 먼저 썩고 상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그 위험한 전파의 법칙을 너무도 잘 아신 것 같다.
그래서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죄지은 사람, 세리와 창녀까지 회복시키려 애썼다.
함께 자고 먹고, 고치고 위로하고 용서하며 외로움을 딛고 다시 건강하라며.
그들의 상처와 불행한 멍든 상태가 얼마나 더 큰 비극을 만들지 아셨기에...
오늘날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사람을
간절하게 서로 돌보라고 부탁하시는 이유도 그래서일거다.
안그러면 세상이 온통 망가지고 통째로 썩은 과일바구니가 되어버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