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나 사실은, 성령으로 임신했어!”
“아, 그랬구나...”
마리아의 해명에 요셉이 그렇게 단번에 쉽게 받아들였을까?
자기 미래를 온통 함께 만들고 누리고 살아갈 비둘기 같고 사슴 같은 연인 마리아, 단 한번도 그녀와 동침한 적이 없다고 장모될 마리아의 엄마에게 따지듯 내뱉는 요셉이 말이다.
소중히 아끼는 물건일수록 망가지면 속상하는 법이다. 하물며 단 하나뿐인 배우자가 될 여자에게 자기 아이가 아닌 생명이 잉태되었다고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클까?
“당신은 평범하지 않은 선택받은 분이예요”
“...그 말을 믿으란 거요? 내 아내로 생각했는데 그 약혼이 깨어졌소.”
우리는 살면서 믿기 어려운 일, 감당하기 벅찬 시련을 만날 때 곧잘 그런 위로를 듣는다.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시려고 그런 겁니다!’
‘복을 많이 주려고 특별히 선택했으니 감사하세요!’
하지만 그건 한발 떨어져서 힘겨운 고통은 없는 제3자의 쉬운 말이지 당사자가 단숨에 평안이 오지는 않는다. 요셉은 랍비와 의논을 했다. 랍비는 두 가지 선택을 내놓았다.
그 하나는 약혼기간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동침할 경우 마을 밖으로 데려가 둘 다 돌로 쳐죽이는 것, 또 하나는 결혼 후 이혼장을 손에 쥐어주고 헤어지는 것.
랍비는 오랜 이웃으로 지낸 두 사람이 안타까워 두 번째 길을 선택하기를 은근히 빌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보다 더 나갔다. 랍비보다 더 마리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그래야 할 마음으로,
“안돼요! 그녀의 수치가 드러날 겁니다.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그녀를 보내더라도 비밀리에 할 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 재물과 명성과 성공의 상실 앞에서, 또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등이 닥치면 우리는 괴로워한다. 그것들이 내 것이라는 애착을 가진 만큼 비례로 더 심한 상실감에 힘들어 한다. 포기하거나 애당초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인정을 하게 될 때까지는...
마리아가 마을바깥에서 돌로 맞아 죽는 꿈을 꾸고, 버리지도 안지도 못하는 고통에 시달릴 때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가 도와주러 왔다.
겁내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여라, 곧 아들을 낳을지니 예수라 하라. 구세주니라
그렇게 우리는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사랑과 미움의 사이에서, 가난과 부유함의 욕망 사이에서, 무명과 명성의 길등 사이에서, 늘 흔들리고 좌절하면서 살아간다. 놓지도 쥐지도 못하는 서성이는 한계를 가진 존재로...
말씀 한 마디로 그 저울질을 기울게 하여 평안을 누리게 해주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한다. 죽을 것 같이 괴롭던 요셉에게 내려준 그 은총!
마침내 이는 요셉은 말한다. ‘그대를 내 배필로 맞노라!’ 라고,
(우리가 선에도 악에도 기울지 못하고 괴로울 때, 우리를 도우소서! 죄에서 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