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예수 7 - 예언은 기다리는 자에게만

by 희망으로 김재식


예언은 과연 이루어질까?

많은 원인들이 많은 일들을 만들어내고, 그 일들이 물처럼 흘러 한 곳으로 모이면 샘이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역사의 바다. 삶들의 바다. 그 결정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예언의 결과가 된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수 백 년에 걸쳐 기쁨과 슬픔의 여정이 바람이 되었고 기도가 되었다. 하늘에 대고 호소하는 거대한 기도로, 그 바람에 돌아온 대답이 예언이 되었다. ‘너희를 위하여 한 구세주가 베들레헴에 태어나리라‘

그 예언은 낮고 초라한 자리에서 고단하게 사는 이들이 아니면 기억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하는 법이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꿈이 없다. 바람도 없다. 다만 잃을까봐 생기는 불안만 있을 뿐, 그러니 그들에게는 천국에 대한 희망도 기다리는 예언도 없는 것이다.


“예언대로?”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으로 호적조사를 하러 가야한다는 요셉의 말에 마리아의 엄마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오랜 세월을 조상과 조상의 조상으로부터 내려 받은 소원, 가난한 백성을 위해 오신다는 구주가 작은 고을 베들레햄에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로마와 식민지 이스라엘, 얽히고 얽힌 정치적 목적과 통치의 수단으로 일어난 흐름이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예언을 실행하기 위한 작은 물결이었음을 대부분은 모른다. 모두가 자기들의 힘이 만들어내는 일정으로만 안다. 그 어리석은 착각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가진 자들과 통치하는 자들은 여전히 모른다. 세상이 자기들 입김으로 굴러가는 줄만 안다.


“못 구했소, 다른 곳을 찾아보리다”

마리아에게 미안하게 말하는 요셉, 그렇게 그들은 아이를 해산할 방 하나 없었다.

“베들레햄을 다 돌아다녀도 못 구할 거예요.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세요. 가능하면 나중에 도와주러 가리다”

그것은 겨우 남의 집 일이나 돕는 낮은 백성 아주머니였다.

“천사가 나타나 가르쳐 주었지요.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떼로다. 그리곤 오늘 그 목자가 왔다고, 그는 가난한자들을 위해 왔다고도 했지요!”

궁궐도 아니고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작은 고을, 그것도 외딴 외양간 건초보관소로 사람들이 몰려 왔다. 앉아서 대접받는 이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새로운 왕과의 만남을 위해, 스스로 온 사람들, 그것도 들판의 목동과 멀리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온 동방박사들과 마굿간의 가축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렇게 낮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오시는 구세주답게...


떠들고 마시며 화려한 생을 누리는 이들은 참여하지 못하는 시간, 장소, 축복... 지금 이 시대에도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크고 화려한 성공가도를 달리는 무리들이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만이 아니라 종교인조차, 교회조차도 말이다. 그들은 열 번을 죽었다 깨도 만날 수 없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함께하러 온 예수는 결코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예언은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지는 하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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