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한 편지 - 그리고 시작된 ‘딸에게 보낸 엽서

by 희망으로 김재식


<보내지 못한 편지 - 그리고 시작된 딸에게 보내는 엽서>


짐 가방은 부치고 딸아이는 기차역에서 배웅하며 보냈다. 멀리 남쪽 학교 기숙사로. 대학 준비하던 때는 날마다 학교앞에서, 독서실에서 대기하고 불려가며 때론 투덜거렸다. 그때는 얼른 쉴 날을 기다리곤 했는데 정작 너무 조용해지니 그립더라. 그래서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돌아보고 그냥 바쁘느라 놓친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움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더니 진짜 그림들이 그려졌다. 사랑도 그럴까? 엿새 정도 그리니 조금 덜어졌다. 내 바닥은 그리 깊지 않은 걸까? 흐흐


하루 - 품고 살아야지.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았다. 혹시 너를 지나가지 않을까? 편지라도 부탁해볼까 싶었다. 그쪽으로 부는 바람에 스쳤다. 네가 보고 싶다 말이라도 중얼거리면 어쩌면 슬쩍 들려줄지도 몰라 그랬다. 피식 웃음이 났다.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필시 글도 말도 무거울 거다. 가다가 뚝 놓치고 말거다 그런 생각에. 아주 조금 슬퍼졌다. 너를 향한 내 그리움이 어디선가 실종되어 나에게도 너에게도 머물지 못할 것 같아서. 하여 꼭꼭 품는다. 그리움이든 사랑이든 내 품에서 놓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하기로 작정한다.


이틀 - 주고 얻는 추억.


너는 그랬다. 언제나 당당해서 날 때부터 주인이었다. 필요하면 부탁이나 애원이 아니고 돌려받는 듯. 지금이나 아주 어릴 때나 똑같이 내게 그랬다. 너는 사랑을 빌지 않고 요구했고, 나는 인심을 쓰지 못하고 당연하듯 주었다. 마치 빚 갚는 채무자처럼. 세상에서 배우지 못한 공부를 배웠다. 사랑은 받는 쪽도 주는 쪽도 평등하여 빚지지 않고 생색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는 그랬다. 스무 해를 받으면서 나를 기쁘게 하고, 나는 주면서도 축나지 않고 가난하지 않도록, 추억이 산만큼 쌓인 부자로 만들었다.


사흘 -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너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바로 직전 높은 목소리로 소리친 내 앞에서 너는 보이지 않는 천둥이고 벼락이었다. 경우와 권리를 다 가진 내가 휘두른 칼에 정작 피를 흘리고 찢어진 것은 내 가슴이었다. 그럴 줄은 정말 몰랐는데. 평생 꽃으로도 너를 때리지 않겠다고, 한 번도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자신 만만 했는데 꽃보다 아프고 날카로운 말이 있는지 몰랐다. 그 아픈 말은 열배로 돌아온다는 건 더 몰랐다. 하여 갈수록 말은 줄어든다. 바라보기만 하고 듣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나흘 - 언제나 새롭게 낮 설다.


너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과 마음까지도. 그러나 한가지를 알면 두 가지가 낮 설어졌다. 너는 이럴 거야! 하면 아니었고, 너는 이거 싫어해! 하면 또 아니었다. 점점 자신감만 사라졌다. 다른 누구보다야 너를 많이 안다 해도... 그런데 너를 탓할 일이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만큼 변덕스럽고 알 수 없는 사람이란 걸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간신히 알았다. 네가 아빠를 이해하느라 참 힘들었겠다고. 그저 각오하고 또 준비한다. 너는 언제나 새롭게 자라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이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닷새 - 잘못 안 사랑의 동력


네가 웃으면 세상이 온통 웃어서 행복했다. 하여 너를 웃게 하려고 참 애썼다. 먹을 것과 예쁜 옷 인형을 사서 바삐 집으로 달렸다. 너는 남들이 힘들다는 세상의 삶속에서도 나를 힘든 줄 모르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고, 나쁜 것들 앞에서는 나를 멈추게 하는 이유였다. 고단한 하루의 말미에도 너를 재우느라 책을 읽거나 옛날이야기를 지어내야 했고, 발을 주물러야 잠이 드는 너를 안고 같이 잤다. 비로소 알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너를 지키고 살리는 줄 알았는데 네가 우리를 붙들어주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엿새 - 이별도 불행하지는 않다.


네가 머물던 자리는 아무 것도 없는 빈터가 되고, 네가 웃었던 공간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여기 이 자리 이 순간과 마주하며 외로움과 씨름한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너의 모습 너의 소리는 아직도 여운이 남았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나의 기억으로. 그래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 너의 얼굴을 그리며 그리워할 수 있는 기회 주셨음을, 너의 웃음소리 행복하게 떠올릴 순간 주셨음을. 추억은 지나간 축복이 되고, 다시 만날 기다림은 기쁨을 쌓는 또 다른 축복이 되어 지금의 이별조차 그다지 불행하지 않다.


추신 - 결정적으로 나를 떠민 날


책을 한 권 사려고 서점을 들러 바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가 늘 나를 떼밀어 들어가서 얼음 잔뜩 들어간 스무디 한잔을 강탈(?) 하던 카페안으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야구모자에 묶은 머리 검정색 파카를 입고 돌아앉아 있는 여학생 한 명. 아... 아이가 멀리 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 못했다면 문을 열고 들어갔을거다.

"너 여기서 뭐해?" 하면서... 딱 딸아이와 너무 닮았었다. 뒷 느낌이.


아직도 여기저기 흘려놓은 흔적들, 소리들이 문득 나를 불러세웠다. 많은 것, 많은 시간을 나누고 같이 보낸다는 것은 하나가 되어 다시 분리가 힘들어지고 흔적이 깊어진다는 말인가 보다. 결국 이 헛 것을 본 날이 나를 떠밀고 내 손을 움직여 말 대신 글을 쓰게 했다. 날마다 한 장의 엽서처럼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아이가 올라오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빼고 꼬박 첫 일년을 그렇게 멀리 헤어져서 나누는 대화의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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