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23 –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by 희망으로 김재식




“어서 오세요! 와서 우리를 구해주세요!”

아직 배도 닿기 전에 언덕위의 사람들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구조를 해주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반갑고 간절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자기들이 바라는 그 구조가 사실은 더 깊고 큰 것들이며, 욕심을 채우는 수준의 그런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배고픈 상태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힘센 군인과 로마의 억압에서 좀 떵떵거리며 자유롭게 사는 것, 또는 병이 싹 고쳐지거나 도덕적으로 좀 더 폼 나게 살 수 있는 힘 같은 그런 차원이 아님을...

“내가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가 배에서 내려 땅으로 올라와 던진 말은 그야말로 의외였다. 값이 싼 평화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예수가 던진 것은 값이 비싸고 죽어가는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도구, 검이었다. 어느 시대나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지금 가진 자,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자, 지금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변화란 늘 잃거나 떨어지는 불안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잠잠한 평화가 좋은 것’ 늘 그렇게 말한다. 혹 억울한 일이 있어도 세상은 바꾸지 말고 사회의 한 부분을 바꾸고, 그것보다 더 높이 사는 것은 남들은 내버려두고 자신의 도덕적 내면만 바꾸는 걸 더 칭찬하는 따위. 그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평화를 바라며 참고 살라는 시대에 검을 던져 주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사이에 불화를 심으러 왔도다! 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살리라!”

그것은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을 망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혈육으로 주장하는 독선의 권력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말함이다. 하물며 교회 안, 사회 조직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이미 가진 권리가 모든 행실을 당연한 합법적 권리로 주장하지 못한다는 해방의 선언이다. 옳은 일만이 옳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평등의 세상을 선포하는 것이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리라!”

예수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먼저 차지한 자리, 소유가 이후 모든 것들을 자동으로 또 가지게 되는 세상, 그걸 당연하다고 누리는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의 자리나 권리만이 아니라 영적인 가르침, 구원의 고백에 가지 적용되는 엄청난 선언. 정말 이미 누리고 잇는 사람들이 과연 수용을 할까? 그것도 고분고분하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하루아침에 기존 누리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충격의 선언일 수밖에...

그리고 예수는 그 놓지 않는 바탕의 이유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모든 말과 행동과 삶의 기준이 되는 바탕에 숨어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훔쳐가리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다. 모든 행동의 원인에는 보물이 있었다. 모든 말과 편가르고 싸우는 바탕에는 그 보물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한 겹, 두 겹, 포장하고 미화하여 그것들이 철학이나 종교의 논리로 무장을 하면 전쟁도 하고 살인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예수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라고 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도 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도 있다!’고, 썩고 없어질 땅의 세상 에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 땅에 보물을 만들고 모으고 쌓는다. 영원하고 향기로운 나눔의 하늘에 마음이 온통 가는 사람은 당연히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보물만 구하고 하늘에 보관 가능하도록 쌓을 것이다. 보물이 하늘에 있어서 마음이 하늘로 가는 게 아니고 하늘삶이 그리워서 하늘에 어울리는 보물만 구하는 것.

- 평화, 사랑, 나눔, 배려, 친절, 겸손, 긍휼, 양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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