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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규 Aug 09. 2021

모두 <셜록> 망한다고 했다,
한 명 빼고

‘어제 벌어진 일이 아닌, 내일은 달라져야 하는 오늘의 문제를 보도합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끝까지 문제를 해결합니다.  

<셜록>이 함께 세상을 바꿀 동료를 구합니다.’


세상에나, 이런 공고문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셜록>이 일자리를 창출하다니!


내가 이렇게 호들갑 떠는 이유가 있다. 탐사보도, 르포, 내러티브 기사 중심의 매체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만든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야, 그거 하지 마. 100% 망해.”

“미쳤어? 있는 매체들도 문 닫는 판에 새 매체를 만든다고?”


걱정과 비난의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가족, 친구, 동료 기자 모두 말리니 외롭고 쓸쓸했다. 이쯤 되면 ‘하지 말까?’ 하는 마음이 생길 법도 한데, 또 그러진 않았다.


‘사람들이 저토록 말리는데, 나는 왜 이토록 <셜록>을 하고 싶지?’


고민이 깊어질 무렵, 홍익대학교 인근을 걷다가 한 카페에서 익숙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였다. 모른 척, 가던 길 갈까 하다 마음을 바꿨다. 2004년, <오마이뉴스> 공채2기 영어면접 때 영어 한 마디 못한 나를 채용해 10년간 월급 준 분 아닌가.   

카페로 들어가 오 대표 앞에 앉았다. 안부 인사를 끝내고 오 대표가 묻지도 않은 ‘셜록 프로젝트’에 대해 나 혼자 떠들었다. 가만히 듣던 오 대표가 말했다.


“좋네. 해봐. 망하면 어때. 해보는 게 중요하지.”


해보라는 유일한 사람, 드디어 만났다. 2016년 가을의 일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그토록 반대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다. 사실 특별한 이유나 근거 따위는 없다. 대개의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안 되는’ 이유부터 떠올린다. 새 출발선에 선 사람을 만류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이런 경험 숱하게 했다.  


2014년, 10년 다닌 <오마이뉴스>를 떠날 즈음엔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서울 사대문 안이 얼마나 좋은데, 왜 거길 나가? 밖은 지옥이니 회사 안에 가만히 있어.”


백수 기자로 ‘재심 3부작 -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보도할 때 반대는 더 격렬했다. 특히 동료 기자들이 말렸다.


“야, 불가능해! 대법원에서 확정한 판결을 어떻게 뒤집어?”

“나도 그 사건 살펴봤는데, 그 사람들이 살인범 맞아. 괜한 짓 하지 마!”

“재심이 그렇게 쉽습니까? 판검사들이 선배처럼 또라이도 아니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래도 2015년부터 2년간 취재하고 보도했다. 두 사건의 주인공들은 재심을 통해 살인누명을 벗었다. 김신혜 사건은 재심이 진행 중이다.


익산 사건은 영화 <재심>으로, 삼례 사건 등은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으로 만들어졌다. 내가 진행한 ‘재심 3부작’ 보도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 최고 후원금액, 최다 후원자 수를 기록했다.

이 후원금을 밑천으로 2017년 1월 <셜록>을 만들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이때 주변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는 거의 쓰나미였다.


“그 후원금 그냥 ‘인 마이 포켓’ 해. 좀 많다 싶으면 나한테 술이나 사든가. 왜 사업으로 고생을 사서 해? 자영업자 열에 아홉이 시작한 지 2년 내에 망하는 거 몰라?”


<셜록>도 2년간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2년만 견디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직원 월급은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 기자들에게 “돈 벌어 오라”는 소리도 안 했다. 이런 믿음이 있었다.


“독자는 좋은 기사를 외면하지 않는다.”


<셜록> 기자들은 취재와 기사 쓰기에 집중했다. 우린 이런 보도를 했다.  


-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을 세상에 처음 폭로했다. 디지털성범죄영상 유통도 고발했다.

- '고리대금업자 국정원'을 통해 국정원이 과거사피해자를 ‘빚고문’ 하는 현실을 알렸다.

-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비밀 안락사를 처음 폭로했다.

- ‘재판거래 피해자 만나다’ 기획으로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피해자를 집중 보도했다.

- '인천공항 어느 가족'으로 난민 루렌도 가족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 '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 보도로 사립학교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 '양육비 외면하는 배드파더스'로 양육비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 '은행권의 정유라' 보도를 8개월 이어가며 부정입사자들이 여전히 근무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우리가 이걸 취재하고 보도할 때도 주변에선 “<셜록>이 저걸 해낼까?” 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셜록>은 끝까지 보도해 이런 성과를 냈다.


양진호 회장은 구속됐다. 박소연은 <케어> 대표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빚고문’의 정의로운 해결을 약속했다. 루렌도 가족은 공항을 벗어났다. 영남공고는 정상화됐고, 이사장은 구속됐다. 혼자 아이 키우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양육비 관련 법이 만들어졌다. 은행권 부정입사자들은 모두 퇴사했다.

구속된 양진호 회장

<셜록>은 이 모든 일을 기업 광고, 정부 보조금, 지방자치단체 협찬 없이 했다. 투자도 받지 않았다. <셜록>을 응원하는 시민이 유료독자(후원자) '왓슨'으로 가입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셜록>이 걸어온 길은 특별하지 않다. 저널리즘 역사에서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독자는 좋은 기사를 외면하지 않는다.’


<셜록>과 함께 하자는 채용 초대장을 쓰면서 과거를 길게 밝힌 이유가 있다. 과거를 알아야 내일을 함께 도모할 거 아닌가.


당신과 함께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고 싶다.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쓰고, 독자는 참여하면서 함께 세상을 바꾸는 선순환. <셜록>이 지금까지 한 일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아직도 고민 되나?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시간차 단독이나 속보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회 수만 노리는 영혼 없는 기사도 쓰지 않는다. 기사로 위장한 기업 광고, 뉴스를 가장한 지방자치단체 홍보도 하지 않는다.


<셜록> 기자는 개인, 혹은 팀 별로 목표가 분명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려진 진실을 찾기 위해 오래, 깊이 취재한다. 회사는 좋은 취재를 위해 모든 기자에게 법인카드를 준다. 영수증 제출? 우린 그런 거 안 한다. 기사 발행 전 법률가의 조력을 받는다. 보도 후에도 마찬가지다.


<셜록>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조차 자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최대한 재밌는 전술을 구사한다. 상황에 맞게 목소리 톤을 조절하는가 하면, 인물 간 긴장과 갈등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대개의 사람 역시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같은 전술을 편다.


반면 한국 언론은 아이템에 맞게 보도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보도 방식에 아이템을 끼워 맞춘다.  


기사는 재미없는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다. 오늘이 지나면 쓰리기통에 버려지는 ‘시간의 쓰레기’도 아니다. 기사는 흥미진진한 인간사의 집합이다. 좋은 기사는 오래 살아남고 때로는 역주행을 한다. 건강한 물고기가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이 말이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듣는 방식이 달라졌다면 말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셜록>은 재밌는 기사, 스토리텔링 능력 향상을 위해 자기계발비를 지원한다.


<셜록> 기자는 프로젝트에 맞는 콘텐츠 전략을 세우고 영상, 사진, 팟캐스트 등을 유연하게 활용한다. 이 모든 걸 혼자가 아닌 관련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셜록> 구성원의 다른 이름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일에 도전해 끝내 문제를 해결한다.  


<셜록>은 아직 작은 회사다. 역사와 전통도 없다. 큰 조직에 들어갔을 때 느낄 법한 안정감 같은 건 기대하면 안 된다. (대신 연봉은 꽤 준다. 조중동 대척점으로 주로 거론되는 세 언론사보다는 많이 준다.)


<셜록>은 고루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거에 빚진 거 없이 미래로 열려 있다. 전통을 따르지 않고 새 길을 만든다. 정파, 이념, 사람이 아닌 진실만 추구한다.


기자 회사원이 아닌 탁원한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고 있다면 도전하시라. 세상을 바꾸겠다는 무모한 사람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법이니까.


진실탐사그룹 <셜록> 채용공고 보기


ps) 여전히 ‘안정’과 ‘안전’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한 마디. 2014년 <오마이뉴스>를 떠날 때, 오연호 대표는 “퇴사 후에도 월급을 주겠다”고 내게 제안했다. 프리랜서로 기사 쓰는 조건으로 말이다. 달콤한 제안, 며칠을 고민했다. 끝내 거부했다.


그때 내가 안전을 택했다면 이렇게 채용 공고문 쓰는 일은 없었을 거다. 명심하시라.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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