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이야기 - 3
배에 아무리 힘을 줘도 두 다리는 공중으로 뜨지 않았다. 필라테스 강사가 “조금만 더!”를 외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복근 운동만 10분 넘게 해 뱃가죽이 마비됐는데, 도대체 어디에 힘을 주라는 건가.
나무에 붙은 8월의 매미처럼 나는 매트에 등을 착 붙이고 천장을 바라봤다. 거친 숨이 연신 터졌다. 얼굴의 땀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자, 무릎과 발목을 쭉 펴서 발가락을 앞으로 향하게 하구요. 코어에 힘을 줘서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리세요!”
강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GX(Group exercise)실은 매미의 떼창같은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운 7~8명의 중년 남성들은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올리려 용을 썼다. 이 아저씨들, 무슨 영생을 누리겠다고 아침 6시부터 이 고생인가.
휴식을 끝낸 나도 두 다리를 천장 쪽으로 가까스로 들어올렸다. 머리와 몸통은 바닥에 누운 상태니, 내 자세는 니은자(ㄴ)가 됐다. 강사의 다음 지시가 떨어졌다.
“엉덩이 옆에 있는 양 손바닥으로 바닥을 지그시 누르면서, 다리를 머리 쪽으로 천천히 넘겨 보세요. 쭉 편 무릎을 얼굴 쪽으로 최대한 밀착하시고, 발가락이 정수리 위 바닥에 닿도록 해보세요. 롤 오버(roll over) 자셉니다.”
허공의 두 다리는 머리 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손과 팔, 다리에 힘을 주고 버둥거려도 소용 없었다. 나는 허공의 다리를 바닥으로 떨어렸다. 입에서 거친 숨이 연신 터졌다
나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원래 포기란 치명적으로 달달한 법. 진정되는 호흡과 함께 달콤한 안도감이 몸 곳곳으로 퍼졌다. 다시 강사 목소리가 GX실을 흔들었다.
“두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팔꿈치로 바닥을 지탱하는 겁니다. 그 상태에서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리세요. 목, 어깨, 팔꿈치를 마닥에 대고 물구나무 서듯이 천장을 향해 다리를 쭉 펴세요!”
고개 돌려 풀린 눈으로 동료 수강생들을 바라봤다. 다들 낑낑대며 다리를 머리 쪽으로 넘기려 버둥거렸다. 최고 연장자인 23층 아저씨의 얇은 다리도, 영국 축구팀 아스널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온 OOO동 덩치 좋은 아저씨의 두꺼운 다리도, 후들후들 흔들리긴 해도 어쨌든 공중에 있었다.
매트 위에 편히 놓인 다리는 내 것 뿐이었다. 자발적 이탈자의 해방감은 순식간에 탈락자의 민망함과 고독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웃집 아저씨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들 들어올린 하체를 머리 쪽으로 넘겨 몸을 반으로 접었는데, 나만 접히지 않았다! 난감했다. 남들 못하는 걸 혼자 해낼 때의 우월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면, 다들 하는 걸 나만 못할 때의 열등감은 쓰나미처럼 온몸을 덮치는 법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처럼만 살아라.’ 이 땅의 중장년에게 저 말은 율법, 계율보다 무서운 삶의 계시가 아니었던가. 온갖 쿨한 제스처로 저 말씀에서 자유로운 척 했는데, 별 것도 아닌 ‘몸접기’에서 열등감이 터질 줄이야.
게다가 여긴 약 4300세대 가구의 사람들이 거의 같은 모양-동일한 크기-비슷한 가격대의 집에 살면서, 같은 놀이터-공원-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하는 아파트단지가 아닌가. 필라테스 동료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고. 개성보다는 동일성 지향이 공기처럼 익숙한 이 공간에서 남들처럼도 아닌, 남들보다 처진다는 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처럼 공포스런 일이다.
나는 남들만큼이라도 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뜨거운 물속에 빠진 문어처럼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강사님이 내게 다가왔다.
“힘 빼세요. 목이랑 어깨에서 힘을 빼야 다리가 넘어갑니다.”
강사님은 내 두 다리를 잡고 천천히 머리 쪽으로 넘겼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힘을 빼세요~.”
강사님은 넘어져 우는 아이 일으켜 달래듯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힘을 빼기 전에 혼부터 빠질 듯했다. 필라테스 하다 사망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리를 풀고 매트 위에 널브러졌다. 이대로 포기.
중년 남성의 뱃살 박멸을 역사적 사명으로 안고 태어났는지, 강사님은 언제나 고강도 복근운동으로 필라테스를 마무리한다. 나는 그것마저 포기한 채 매트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 아파트가 태릉선수촌도 아니고, 내가 올림픽에 나갈 것도 아닌데, 안 되는 걸 너무 쥐어짜지 말자 싶었다.
이젠 다 같이 벗고 씻을 시간. 1시간의 운동이 끝나면 중년 남성들은 GX실 바로 옆 사우나로 줄줄이 이동한다. 옷을 벗으면서 어색한 인사를 나눌지 말지, 수줍음과는 결이 다른 어색한 공기가 탈의실에 수증기처럼 퍼진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조금 과감해 진다. 딱히 시선을 돌릴 데도 없고, 할일도 마땅치 않으니 말이다. 샤워부스에서 눈이 마주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분위기는 또 한 번 달라진다.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함께 운동하고, 다시 좁은 사각형의 뜨거운 물속에 마주 앉는 시간. 반신욕으로 줄줄 흐는 내 땀은 네 것이 되고, 네 땀이 나의 몸에 감기는 물아일체의 순간.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간. 하지만 딱히 서로 할말이 있는 건 아니어서, 각자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지는 고요의 순간….
한참 뒤에 눈을 뜨자 날 필라테스 세계로 이끈 23층 아저씨가 현자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 만은 하느냐’고 묻는 듯한 그윽한 눈빛에 내가 먼저 반응했다.
“저는 왜 몸이 뒤로 안 접힐까요?”
“괜히 억지로, 힘으로 하지 마세요. 그러다 큰일 나요. 힘을 빼셔야 하는데….”
힘을 빼라… 오늘 오전에만 벌써 두 번째 들은 이 말은 그동안 몇 번이나 내 귀를 때렸을까. 서른 살 무렵, 서울 계동 현대사옥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울 때였다. 시골에서 ‘개헤엄’ 좀 쳤던 나는 수강 첫날부터 중급반으로 향했다. 강사가 배정한 게 아니라 내 마음대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수영 그까이꺼 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날 레인을 몇 바퀴 돌지도 못하고 수영장에서 거의 졸도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강사가 말했다.
“초급반으로 가세요.”
나는 초급반에서 발차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벽을 잡고 물속에서 발차기를 할 때면, 유아발레단에 입단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몸에서 힘을 빼세요! 그래야 몸이 뜨고, 멀리 갈 수 있어요. 힘을 빼시라니까!”
건방진 생각은 몸으로 다 드러나는 법인지, ‘이게 뭔가’ 싶을 때마다 강사는 내게 충고했다. 그 수영장에서 “힘 빼라”는 말을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는데, 물 밖에서도 저 말을 또 들었다. 클래식 기타를 배울 때였다. 내가 기타를 비스듬히 안고 자리에 앉으면 늘 강사가 말했다.
“현을 그렇게 꽉 쥐지 않으셔도 되구요. 몸이 너무 뻣뻣하신데…. 몸에서 힘을 좀 빼보세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를 엉망으로 쓰거나, 눈에 힘을 주고 읽어야 할 만큼 어렵고 딱딱하게 썼거나, 마감시간 안에 글을 마치지 못하면 선배들이 늘 지적했다.
“글에 왜 이렇게 힘을 줬냐!”
“독자를 가르치려고 드니까 자꾸 글에 힘을 들어가지!”
“힘을 빼고 써야 진정으로 힘 있는 기사가 나오는 거야!”
“이게 평소 네가 쓰고 싶었던 거야? 그럴수록 몸과 마음에서 힘을 빼고 써야 잘 써지지!”
“힘 내라”는 말보다 “힘 빼라”는 말을 더 많이 들으며 살아온 듯하다. 숱하게 많이 들어도 저 말을 실행하는 건 어렵기만 했다. 힘을 빼라는 게 뭔지, 물리적 힘은 알겠는데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건 뭔지..
그날의 실패 이후 집에서 뒤로 몸접기, 롤 오버를 시도해봤다.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긴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시도해 수없이 실패했다. 그렇게 낑낑 거릴 땐 머리 쪽으로 넘어가지 않던 다리가, 어느 순간에 몸에 힘을 풀자 비로소 부드럽게 넘어가 몸이 반으로 접혔다.
GX실에 수없이 퍼지던 강사님의 "힘 빼세요~" 목소리, 목욕탕에 들은 23층 아저씨의 조언... 모호하기만 했던 그 말의 의미가 그제야 조금씩 이해됐다. 그동안 흘린 땀은 결국 힘을 빼는 과정이었던 거다.
힘을 빼기 위해 힘을 키우고, 오랜 훈련으로 단단해진 근육은 불필요한 곳에 몰린 힘을 풀어주는 데 쓰이며, 수련이란 바로 그런 과정이란 것을 한여름 내내 매미처럼 울고서야 알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 역시 이러한 원리로 작동할 테고.
주변을 살펴봐도 진정한 고수들은 몸과 마음에서 힘을 잘 덜어내는 이들이다. 힘을 뺐기에 행동이 부드럽고, 자신의 일과 작품을 심플하면서도 깔끔하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무엇보다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특히 넘기 어려운 벽에 직면했을 때 몸과 마음에서 힘을 잘 뺀다.
힘을 풀면 이렇게 몸도 접히고 일이 술술 풀리는데, 왜 또 나는 이번 글에 그토록 힘을 주느라 일주일간 낑낑 거렸을까. 정말이지 고수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