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3만4천3백2십3번

by David

“키키… 차원은 몇 개나 있어? 몇 개 차원을 이동해봤어?”


이런 질문을 하는 대상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던 키키는

미하엘의 얼굴을 보며

신나게 얘기했다.


“3만 4천 3백 2십 2번째”


“와… 정말 많구나. 참, 넌 500살이지?”


“난 지금까지 차원이동을 고통스러워하면서,

이동과 동시에 빠져나오고, 그리고 괴로움을 반복했어.

근데 이번은 달라.

여기서 나는 나를 찾고, 왜 이동하는지 해답을 얻을 생각이야.

미하엘, 다 네 덕분이야.

이전 3만4천3백2십2번의 이동도 물론 헛된 이동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생각이 바뀐 게 너무 다행이야. 고마워.

아무튼 나를 찾아보자. 분명 나와 똑같이 생겼을 거야.

그리고… 500살이고.”


미하엘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비게이션이나 GPS라도 있다면 쉽게 찾을 텐데,

온통 하얀 이 차원에서 키키를 찾는 게 말이 되나 싶던 찰나,


저 멀리서 불빛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키키, 저게 뭐야? 별인가? 아니면 유성?”


“흠… 뭐지?

근데 불빛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아니야, 미하엘. 내가 보기에도 그런데… 그것도 아주 빨리…”


점점 커지는 불빛은 굉음을 내며

키키와 미하엘이 있는 우주선 옆에 착륙했다.


“키키, 저거 봐… 저거 우리 우주선이랑 비슷한데…”


“맞아. 그런데 왜 똑같은 우주선이 또 있지?

근데 굉장히 낡았는데…”


그때 해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엔 나이 들었지만 뭔가 당당한 키키 선장이

열린 우주선에서 터벅터벅 내려오고 있었다.


“어이. 너는 키키…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혹시 넌 차원이동이 되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는 거지?”


차원이동을 어떻게 아는 건지,

그리고 저 나이든 키키는 내 위치를 어떻게 알고 날아온 건지—

각종 의문이 들었지만,

조심스럽게 그 질문에 짧게 대답만 하였다.


“응. 내 우주선은 차원이동이 돼.

…너도 이동이 되는 거야?”


“아니.

내 우주선은 400년 전 차원이동 기능이 고장난 후로

지금은 이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

고장 났을 당시, 차원이동계가 이상을 일으키면서

400년 전으로 이동돼버렸지 뭐야.”


“혹시…”


“맞아.

지금으로부터 400년 후의 너야, 키키.”


다른 차원에서 나를 찾으려고 했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다니.


“키키… 넌 좋은 키키야?”


이상한 말을 하는 키키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미하엘이 보다 못해 한마디를 했다.


“그럼 우리 키키는 얼마나 좋은 키키인데.

세심하고, 잘 챙겨주고, 착하고… 또…”


이때, 미래의 키키가 말을 자르고 한마디를 했다.


“나쁜 키키이구나.”


“아니야. 우리 키키는 좋다니까?”


“그러니까 나쁘다고...

좋은 키키가 나쁜 키키이고,

나쁜 키키가 좋은 키키이거든.


난 굉음을 내며 우주선이 오는 걸 보고

또 다른 키키인 줄 알고 왔거든.

그것도… 나쁜 키키인지.


그래야 내가 성찰하고, 배울 수 있단 말이지.

좋은 키키는 날 약하게 만들고 안주하게 만들어.

하지만 나쁜 키키는 날 성찰하게 하지.”


이해가 안 갔던 키키는

불쑥 말을 꺼냈다.


“나 이해하고 싶어.

그럴려면 내가 네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퓨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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