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차원은 몇 개나 있어? 몇 개 차원을 이동해봤어?”
이런 질문을 하는 대상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던 키키는
미하엘의 얼굴을 보며
신나게 얘기했다.
“3만 4천 3백 2십 2번째”
“와… 정말 많구나. 참, 넌 500살이지?”
“난 지금까지 차원이동을 고통스러워하면서,
이동과 동시에 빠져나오고, 그리고 괴로움을 반복했어.
근데 이번은 달라.
여기서 나는 나를 찾고, 왜 이동하는지 해답을 얻을 생각이야.
미하엘, 다 네 덕분이야.
이전 3만4천3백2십2번의 이동도 물론 헛된 이동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생각이 바뀐 게 너무 다행이야. 고마워.
아무튼 나를 찾아보자. 분명 나와 똑같이 생겼을 거야.
그리고… 500살이고.”
미하엘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비게이션이나 GPS라도 있다면 쉽게 찾을 텐데,
온통 하얀 이 차원에서 키키를 찾는 게 말이 되나 싶던 찰나,
저 멀리서 불빛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키키, 저게 뭐야? 별인가? 아니면 유성?”
“흠… 뭐지?
근데 불빛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아니야, 미하엘. 내가 보기에도 그런데… 그것도 아주 빨리…”
점점 커지는 불빛은 굉음을 내며
키키와 미하엘이 있는 우주선 옆에 착륙했다.
“키키, 저거 봐… 저거 우리 우주선이랑 비슷한데…”
“맞아. 그런데 왜 똑같은 우주선이 또 있지?
근데 굉장히 낡았는데…”
그때 해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엔 나이 들었지만 뭔가 당당한 키키 선장이
열린 우주선에서 터벅터벅 내려오고 있었다.
“어이. 너는 키키…
살면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혹시 넌 차원이동이 되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는 거지?”
차원이동을 어떻게 아는 건지,
그리고 저 나이든 키키는 내 위치를 어떻게 알고 날아온 건지—
각종 의문이 들었지만,
조심스럽게 그 질문에 짧게 대답만 하였다.
“응. 내 우주선은 차원이동이 돼.
…너도 이동이 되는 거야?”
“아니.
내 우주선은 400년 전 차원이동 기능이 고장난 후로
지금은 이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
고장 났을 당시, 차원이동계가 이상을 일으키면서
400년 전으로 이동돼버렸지 뭐야.”
“혹시…”
“맞아.
지금으로부터 400년 후의 너야, 키키.”
다른 차원에서 나를 찾으려고 했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다니.
“키키… 넌 좋은 키키야?”
이상한 말을 하는 키키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미하엘이 보다 못해 한마디를 했다.
“그럼 우리 키키는 얼마나 좋은 키키인데.
세심하고, 잘 챙겨주고, 착하고… 또…”
이때, 미래의 키키가 말을 자르고 한마디를 했다.
“나쁜 키키이구나.”
“아니야. 우리 키키는 좋다니까?”
“그러니까 나쁘다고...
좋은 키키가 나쁜 키키이고,
나쁜 키키가 좋은 키키이거든.
난 굉음을 내며 우주선이 오는 걸 보고
또 다른 키키인 줄 알고 왔거든.
그것도… 나쁜 키키인지.
그래야 내가 성찰하고, 배울 수 있단 말이지.
좋은 키키는 날 약하게 만들고 안주하게 만들어.
하지만 나쁜 키키는 날 성찰하게 하지.”
이해가 안 갔던 키키는
불쑥 말을 꺼냈다.
“나 이해하고 싶어.
그럴려면 내가 네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퓨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