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戀歌)ep.22

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 타는 이야기

by 김재석

ep.22 어린왕자 호(號)

마호멧 집안의 집사 아저씨는 자밀 이브라힘이다. 편하게 자밀 아저씨라 불렀다. 그는 이집트에서는 별칭으로 부릴 길 좋아한단다. ‘호루스’. 나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매의 머리를 한 그 신 이름 맞냐, 고 물었다. 자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리를 카이로 구석구석 데리고 다닌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아키코나 나나 학수고대한 건 나일강 크루즈 투어였다. 내가 마호멧을 만나는 거라면, 이키코는 마치 크루즈가 백마처럼 보이고, 그 백마를 탄 왕자님과 나일강을 둥둥 떠다니는 것. 민망할 정도의 말이지만 그녀는 예비 신혼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카이로에서 이틀 동안 자밀 아저씨 집에 머물렀다. 그는 중년의 미혼남이다. 아마 부모와 형제들 대부분을 장남인 그가 돌봐 온 듯 했다. 나는 어쩜, 백프로 공감형 인물을 만났을까 싶었다.

그가 마호멧 집안의 집사가 된 내력을 이랬다.

그는 카이로 빈민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관광객 삐끼(?)에서 관광지 마부까지 두루 이집트 하층문화를 섭렵했다. 어느 날 품위 있는 젊은 사우디인과 그의 미국인 부인을 마차에 태웠다. 그들을 데리고 룩소르 유적지를 다니는데, 어린아이들이 “원 달러, 원 달러.” 하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그 젊은 부부는 자상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돈을 주었다. 사우디 남자는 부인에게 “4천 년 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문명을 만든 문명인들이 이제는 조상들의 긍지와 자랑이 가득한 이곳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자밀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마차 위에서 멈출 것 같지 않은 울음을 터지고 말았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그를 달래는 신세가 된 사우디 남자와 그는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 후 사우디인 남자는 후견인이 되어 그를 사우디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마호멧의 아버지였던 사우디인 남자는 자밀을 ‘호루스’라고 불러 주었다.

나는 그가 ‘운전기사’란 말에 손사래를 쳤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집사라는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보살피는 이집트 가족들이 있었으며, 이집트의 신 호루스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호멧이 이집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자밀아저씨가 마중 나가서 그를 데려오자마자 우리는 카이로에서 룩소르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키코와 나의 일정이 빡빡해서라기보다는 어렵게 휴가(?)를 내고 온 마호멧을 배려해서 서둘렀다. 그는 아웃사이드 프린스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직장인이다. 자밀 아저씨가 자동차로 가자고 했지만 마호멧이 단 칼에 거절했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보디가드 하겠단다. 자밀 아저씨에게 암행(?) 부탁을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아키코는 처음 마호맷을 보는 순간부터 까악! 했는데 지금은 맴맴, 한다. 그의 어깨에 달라붙어 매미가 되었다.

‘자밀 아저씨, 고마웠어요. 마호멧도 한 어깨하니까 안심은 되지만, 삐끼한 아저씨만큼 유적지를 잘 돌아다닐지 모르겠어요.’

룩소르의 선착장에서 나일강 크르즈를 탔다. 야간열차에서 내려 하루 온 종일 룩소르를 쏘다닌 그 다음날이라 나는 침대로 직행했다.

‘아키코는 아마 4층 풀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자랑하겠지. 마호멧이 흐뭇하게 보는 앞에서…,’ 이런 잠꼬대를 하면서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룩소르를 돌아다녔다. 신기한 건 현재가 아니라 4천 년 전 거리다. 더 신기했던 건 내가 꿈속에서 개꿈이네, 했다는 거다.

람세스 2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신전부터 파라오의 무덤까지 두루 다녔다. 꿈이 늘 그렇듯, 무너진 건물들에 천정이 덥혀있고, 빛바랜 그림과 상형문자는 칼라풀한 총천연색으로 복원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아문 신을 섬기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관들 앞에서 파피루스에 쓰인 ‘사자의 서’를 낭송했다. 지금 석관에 미이라로 남은 남자는 약관의 나이에 숨진 파라오다. 이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석관에 넣고 봉인하면 내세의 길안내서가 될 터이다.

‘파라오, 왕이시여. 아문의 아들이여!

당신은 아문의 사랑을 받으리. 내세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지혜의 여신 마트의 깃털이, 당신의 심장이 올려 진 저울에 떨어지면

운명은 판가름 나리. 부디 당신의 죄가 깃털처럼 가볍기를….

신 호루스가 당신의 최후 변론을 잘 이끌어주길.’

눈을 떴다. 침실 창문에는 수채화 한 폭이 흘러갔다.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처럼 끊이지 않고 강변의 야자수와 언덕의 집들을 보여주었다. 필름은 계속 돌아가고 내 마음속에서 장면이 바뀌었다.

마호멧의 심장을 돌아 나온 피가 주사바늘을 타고 뚝뚝 떨어진 날, 나는 온 몸을 엄습해 오는 전율 때문에 운명적 인연에 닿아있지 않을까 했다.

마호멧은 피를 뽑고 나서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이 동네에선 비싼 피라 어디 팔아먹으면 안돼요.”

이제야 그의 농담이 이해가 되었다.

왕족의 혈통을 지닌다는 건, 분명 신이 내린 축복이다. 한편으로는 지혜의 신 마트의 깃털만큼 가벼워야 하는 불타는 심장이다.

‘당신의 피가 값비싼 만큼, 당신의 심장은 다 태워 재가 될 만큼 가벼워야 해요. 진정 운명적 사랑이 있다면 그런 거겠죠.’

마호멧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내 책상에 놓인 책 한 권을 봤다.

“The Little Prince?”

“아, 이 책은 사우디 올 때 가져온 책이에요. 책에 나온 영어문장을 매일 조금씩 외워요. 영어가 늘 것 같아서….”

“그럼, 한 구절 읊어줄래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나는 언뜻 떠오르는 짧은 구절을 말했다.

“It's little lonely in the desert. It's also lonely with people.”

(사막에 있으면 조금 외롭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마호멧은 한 구절 듣더니 책을 손으로 집었다.

“또, ……… .”

나는 좀 더 긴 문장을 생각해 봤다. 여우가 어린왕자와 사귀기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You're no different than me and the other boy's just a kid. So I do not need you, you do not need me. Fox and many others for you, I just do the same one on Fox. However, if you're me, tames the need arises, we're with each other. Only one person in the world to me you're gonna I'm the only one in the world you're a fox.”

(너는 내게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그냥 난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마호멧에게는 이 구절이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는 그의 눈빛이 서서히 변해갔다.

내 머릿속 녀석들은 이렇게 장난을 쳤다.

나쁜천사 : 막무가내로 들이대지 마. 바람둥이니.

착한악마 : 그럼 한 번 시간을 두고 알아가 볼래요.

나는 그냥 ‘어린왕자’에서 흔히 회자되는 구절이 떠올랐을 뿐이고 읊었을 뿐이다.

그는 책장을 넘기고 넘기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빌려 봐도 돼요?”

“Of course, 어느 안전이라고….”

떠다니는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난 줄 알았는데, 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였다. 세이코 쿼츠(Seiko Quartz) 마크가 또렷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봤다. 저녁식사시간이다. 그런데 나를 깨우러 오지도 않았단 말이야.

‘아키코!’ 너만 내 몫까지 배불리 먹겠다는 거야, 아닌데? 뷔페잖아. 그럼 단 둘이서? 그건 용서가 안 되지.’

식당에 가보니 진짜 둘이서 디너를 즐기고 있었다. 와인을 병 채로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이야.

“어머, 너 푹 자라고 안 깨웠어. 자는데 깨우는 거 미안하더라.”

아키코는 호호호, 하면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한 점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자고 있는데 누가 우리 방에 들어온 것 같애. 너 예쁜 가방만 없어졌어.”

“뭐야! 참말이야. …….”

아키코는 나를 은근히 노려봤다.

“호호호. 너 개꿈 꿨구나.”

“너나 꿈꾸지 마.”

마호멧은 둘이 무슨 소리하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한 남자를 두고 벌써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도 내가 이런 타입이었나 싶었다. 뭘 쟁취하는 타입? 은근히 묻어가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한 번씩 엉뚱한 기질이 발동하는 모양이다. 룩소르에서 마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아키코가 마호멧 팔장을 끼고 있었지만, 친구사이니까, 하며 별 감흥이 없었다.

“둘이 잘 어울리는데.”

나는 올림푸스 카메라로 둘이 팔짱끼고 있는 사진도 한 컷, 찍어줬다. 마호멧은 그냥 잔잔하게 웃었다. 들뜬 내색도 싫은 내색도 아닌….

그런데 둘이, 그것도 나일강을 떠다니는 크루즈 안에서, 디너를 즐기는 모습에 열을 확 받아 버렸다. ‘마호멧, 너 누구 만나러 온 거야.’ 뭐 이런 심정도 겹쳤다.

‘점점 내 심장이 불타기 시작하는 건가. 아웃사이더 프린스씨, 니가 심장을 활활 불태워 버려야 되는 거 아니야, 피도 비싼 게….’

마호멧은 서로 기분 내자며 와인으로 건배를 제안했다.

“It's the miracle… that the person who I like,… likes me”

(그건 기적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그는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천천히, 음절을 끊어가며 읊었다. 그리고 잔을 보며 살짝 윙크했다.

아키코는 워~, 하며 짝짝짝, 박수쳤다.

나는 그만 픽, 웃음이 나왔다. 답을 하듯 잔을 들고 한 구절을 읊었다.

" Well... I must endure the presence of a few caterpillars

if I wish to become acquainted with the butterflies "

(음, 견뎌내야 해. 몇 마리 벌레쯤이야. 만약 내가 나비와 사귀고 싶다면)

아키코는 너는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며 그냥 잔을 쨍, 하고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는 알아가는 사이거든. 너처럼 생짜가 아니거든.’

나는 그 뒤로는 묻어가는 타입으로 돌아갔다. 아키코가 마호멧과 뭘 하든, 사진만 열심히 찍어줬다. 에드푸에 내려서 호루스 신전을 볼 때도, 코옴보에 내려 코브라를 칭칭 몸에 감을 때도 말이다. 나는 무서워서 건들지도 못하겠는데 아키코는 징그러워, 하면서도 마호멧과 팔짱을 끼고, 코브라를 두 사람 목에 감았다.

나는 속으로 ‘아키코, 물어버려라.’ 했다.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치즈, 김치, 이치, 니, 쌍!”

찰칵, 했다.

4층 뱃전에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봤다. 아키코는 이슬람 인사를 배우고 싶다며 마호멧에게 부탁했다. 왜 양쪽 볼을 맞대며 하는 인사 있지 않냐며 말이다.

마호멧은 가족이 아닌 이상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여기는 사우디도 아닌데 어떻냐, 며 아키코가 한사코 마호멧을 석양이 지는 쪽으로 세웠다. 마호멧이 “앗살라 말라이쿰” 하며 그녀의 양 볼에 입술을 대는 시늉을 했다. 그때 아키코가 기습적으로 마호멧의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풍경 좋은데, 하며 사진을 찍어주다 비싼 사진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나는 도파민이 분비돼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세로토닌이 너무 나와 급 우울해졌다.

‘알아간다는 건 어린왕자 구절이나 외우는 거와 틀린 거야. 스킨십인지도 몰라.’

둘이 실루엣으로 석양에 물들어갔다.

‘마호멧, 너도 즐기고 있는 거지. 이 바람둥이야.’

크루즈가 종착지인 아스완에 도착했다. 나는 짐을 정리하다 올림푸스 카메라를 열어 코닥 필름을 아키코에게 주었다.

“자, 선물. 니가 인화해. 어차피 너와 모하멧 밖에 안 찍혔으니까.”

아키코는 “땡큐.” 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았다며 일본에 돌아가서도 늘 ‘미스 수진’이 생각날 거라고 했다. 넌 마호멧과 사우디로 돌아갈 거잖아, 하며….

배에서 내려 아키코와 나, 둘이서 크루즈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했다.

뒤편으로 크루즈 ‘The Little Prince’ 호 마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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