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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16. 2015

기자가 촌지를 받아선 안 될 이유

국정원의 국민 해킹 의혹 보도를 보고 촌지가 떠올랐다

국가정보원의 국민 해킹 의혹 보도를 보면서 생각나는 게 있다. 언론계의 고질적 관행인 촌지와 향응 문제다.


나도 일선 기자 시절 제법 촌지와 향응을 받았다. 내가 촌지 받은 이야기는 과거 출간한 책에서 비교적 자세히 고백한 바 있으니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촌지를 아예 안 받기로 결심을 한 건 언론노조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명색이 노동조합 간부가 입으론 언론자유를 외치면서 뒤로는 촌지를 받아먹는 건 모순이라는 양심에 따른 결정이긴 했지만, 솔직히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검찰이나 경찰, 국정원 등 공안기관이 기자들의 비리도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실제로 국정원과 경찰 정보과에는 '언론 담당'이라는 조정관(국정권 정보요원을 그렇게 부른다)과 형사들이 있었다. 검찰 공안부에도 정보만 수집하고 다니는 요원들이 있었다.


그들이 언론계와 기자들의 비리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목적은 뭘까? 비리를 척결하여 건전한 언론풍토를 조성하기 위하여? 아니, 그걸 약점으로 잡아 언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언론계는 자체 약점이 워낙 많다. 검찰이나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신문사 하나 문 닫게 하는 건 쉽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사들은 지역 주재기자를 채용할 때 '보증금'이라는 걸 받았다. 대개 주재기자가 해당 지역 신문보급소장(지사장 또는 지국장)을 겸했기 때문에 매달 일정 부수에 해당하는 신문지대(구독료)를 본사에 납입해야 했다. 그런데 주재기자가 구독료를 떼어먹고 도망갈 수 있다는 명목으로 아예 채용 때 몇백만 원씩 보증금을 받았던 것이다. 이걸 검찰이나 경찰에서 '기자 채용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적용하면 범죄가 된다.

언론계의 촌지 문제를 까발린 책 <촌지>

그 외에도 기업을 상대로 광고를 달라면서 은근히 불리한 기사가 나갈 수 있음을 암시하거나 하면 공갈죄로 걸 수 있다. 연감이나 공연 티켓 강매도 걸려면 걸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5년에는 60년 전통의 지역일간지 사주가 지역의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광고 강매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적도 있다. 그 사건은 사정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잡아넣을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지역신문은 이런 자체 약점 때문에라도 권력을 제대로 감시 비판하기 어렵다. 잘 보시라. 지역신문에서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기자가 누굴 비판할 수 있겠나.


기자가 권력을 비판하여 이른바 '필화(筆禍)' 사건으로 감옥에 가거나 해직된다면 명예롭기라도 하지만, 촌지 몇 푼 받아먹은 혐의로 걸려든다면 그건 기자로서 인생 종치는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평소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비판하며 정의로운 이미지를 쌓아온 기자가 그런 일에 연루된다면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이 되는 거다. 특히나 그런 비판적인 기자라면 이미 정보기관의 사찰 표적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번 국정원의 국민 해킹 의혹 또한 사실이라면 비판적 언론사와 기자들도 분명 그 타깃 속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촌지는 누가 감시를 하든 말든 당연히 받아선 안 되는 것이다. 그건 크든 작든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뭘 취재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친구들과 무슨 말을 주고 받고 있는지까지 누군가 체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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