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저널리즘의 미래 - AI부터 기후위기까지, 열띤 발표와 토론!
8년간 이어진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가 9년차에 '미디어의 미래'로 확장됐다.
주최자인 미디어오늘의 요청으로 기획에 함께 참여하게 됐고, 세달 가량 이어진 협업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컨퍼런스는 8월 24~25일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첫날 저널리즘의 미래는, 발표 자체가 많다보니 밀도가 높았다.
일부 세션에선 slido 앱을 통해 접수한 객석 질문을 아예 소화하지도 못했다.
이튿날 콘텐츠와 마케팅의 미래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세션에서 준비한 질문은 물론 객석 질문도 대부분 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모더레이터를 맡았던 오전 세션만큼은 완전이 빡빡한 남다른 텐션을 맛봤다. 발표자 케어 및 토론 진행은 예견했던 바인데, slido의 객석 질문을 실시간 체크하고 반영한 것이 과욕이었다. 짜릿한 긴장감과 '멘붕'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제법 후유증을 남겼다)
첫 순서는 강정수박사(더코어 총괄 에디터)의 알찬 키노트.
AI를 위시한 기술이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2022~2023년 거세지는 'Vibe Shift' 현상을 짚으면서 소셜미디어가 죽어가는게 아니고 (엔터 앱과 네트워킹 앱으로 분리되는 등)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2023년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의 하나로 'Enshittification(온라인 콘텐츠의 품질 저하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Media Trust를 강조하며 마무리했다. 92장에 달하는 심도있는 자료들을 30분 시간에 딱 맞춘 깔끔한 발표였다.(관련 기사 - AI가 만든 SNS 풍경… “동질화 그리고 품질 저하”)
두번째 순서는 박태웅의장 주재로 'AI와 저널리즘' 라운드 테이블이 이어졌다. 이 주제는 2023년 '저널리즘의 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아젠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세션을 기획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AI기술과 저널리즘 현장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었다. 뤼튼과 카카오브레인이 AI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설계해 나가는 공격적인 선봉대라 치면 언론사들은 수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후방 수비대 느낌이었다. 대강의 해법은 '정보환경의 변화와 저널리즘의 대응방안'이었다. 'AI'가 정보환경을 어떻게 바꿔가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맥락과 사용례들을 뤼튼과 카카오브레인이 챙겨주고, '저널리즘' 현장의 고민을 곁들인 뒤, 함께 토론하며 간극을 메워보자는 취지의 구성이었다.
'Next Portal, 모두를 위한 AI'를 주제로 뤼튼의 유영준 COO의 발표가 있었다. 그 비전이 담대해 보였다.
카카오브레인의 김재인 칼로사업실장은 'AI 솔루션의 활용사례'를 발표하면서 필자가 공동창업해 운영중인 솔루션 '블루닷'도 소개해 반가웠다.(카카오브레인이 최근 투자한 6개 스타트업 가운데 블루닷 솔루션도 포함돼 있다) 한국일보의 김민성 미디어전략부장은 'AI시대를 맞는 언론사의 고민과 대응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말미에 언급한 AI를 활용하며 '대화하는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기자출신으로 최근 'AI 강의' 책을 펴낸 바 있는 박태웅의장께서 모더레이터를 맡게 된 건 역시나 절묘했다.(Link) 어려운 용어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셨고, 객석 눈높이를 고려해 적절한 질문으로 연결을 시켜주셨다.
점심시간, 학생식당에서 간만에 '학식'을 먹었다. 비 그친 하늘은 파랬고 넓은 연못과 나무 많은 교정 풍경이 좋았다. 짧은 산책 후에 행사장 로비의 후원 부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파라솔 의자가 군데군데 마련된 로비공간은 이틀 내내 자연스럽게 미디어업계 및 콘텐츠/마케팅 관련 지인들을 만나고 새로운 참석자들을 소개받기 좋은 네트워크 장소가 되었다. 데이터분석업체 챠트비트와 슬로우뉴스, 퍼블리시 등의 부스도 준비돼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주목한 저널리즘 현장의 인물은 김현정 앵커였다. 마침 '김현정의 뉴스쇼'는 15주년을 맞기도 했다. 손석희사장 이후 손꼽히는 대표적 앵커라고 할 수 있다. 세션의 타이틀은 '저널리즘의 본질 : 묻고 따지고 되묻기'였다.
김현정 앵커는 오랜 시간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질문의 힘'에 대해 텐션 높게 설명했다. '가장 궁금한 이슈를, 당사자에게, 가장 쉬운 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묻자'는 일종의 운영방침이 확 와닿았다. 몇가지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 짧은 설명 와중에도 뭉클함과 웃음과 공감 등이 교차했다. 대담에 나선 이희정 미디어오늘 대표가 '질문의 요령'에 대해 물었을 때 '인터뷰는 보물찾기다'(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비롯 많은 어록을 쏟아냈다. (‘뉴스쇼’ 15주년 김현정PD “소리꾼 신명나게 판을 벌일 수 있도록 깔아줘야”)
2023년 미디어 현장은 어떤 모습인가. 주요한 이슈는 무엇인지, 그 쟁점을 놓고 토론을 해보는 시간이다. 9년차를 맞은 한국의 대표적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 순서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이기 때문이다.
브리핑 및 모더레이터 역할을 이정환 슬로우뉴스대표가 맡았다. 역시나 명불허전, 8년간 '저널리즘의 미래'를 기획하고 운영한 그 답게 공들여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함께 한 강형철(숙명여대), 황용석(건국대), 최지향(이화여대) 교수와 강신규(코바코)박사 등 전문가들이 튼실하게 알맹이를 채워주셨다.
전환점 맞고 있는 '포털 뉴스' 이야기는 거의 30분 가량 할당해 심도 깊게 다뤘다. 더불어 당면한 최대 현안 '공영미디어의 위기'를 짚었다. 넷플릭스 광고요금제 등 광고시장 얘기도 곁들여졌다.(한국 OTT도 넷플릭스처럼 ‘광고요금제’ 가능할까)
'포털이 뉴스를 중단 또는 포기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포털에서 뉴스가 사라진다면 독자들은 다시 언론사 사이트를 찾게 될까요?' '제평위 중단 상황에서, 고쳐쓸 수 있을까요? 아예 다른 거버넌스가 필요할까요?' 등을 필두로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미리 줌으로 리허설을 한 덕분인지, 정말 많은 쟁점 질문들을 간명하게 툭툭 쳐나가듯 정리하는 답변들 하나하나가 쏙쏙 다가왔다. 끝나고 나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량이 들어온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올 정도였다.
이번 컨퍼런스의 11개 세션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이 세션만큼은 잘 정리된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며 생각을 정리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가지만 여기에 덧붙이자면, 공영미디어의 위기를 논할 때 당연하게도 'KBS와 MBC의 사장을 바꾸려고 하는 사태 및 공영방송 거버넌스' 관련 얘기가 나왔는데, 강형철교수님이 '2가지 아이디어'라며 던진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차라리) 정권이 바뀌면 사장과 이사회가 물러나서 저절로 교체되도록 하자. 아니면, 법원이 명확하게 정리를 해줘야 한다. 몇년이 지난 다음에 해임이 잘못됐다는 판정이 연거푸 나왔는데, 정작 실효성은 없다. 가처분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판정해 주는게 맞을 것이다."(“공영방송 경영자, 경영 못해도 정권 호흡 맞추면 살아남아”)
언론 현장의 새로운 도전을 모았다. 많은 미디어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동아일보의 '주간편성표' 얘기를 이샘물 디지털이노베이션팀장이 소개해주었다.(Link) 발표장표의 첫장에 적힌 '독자가 기대하고 기다리는 뉴스 - 디지털 편성표의 힘'이란 제목처럼 독자 눈높이에 발맞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노력이 훌륭해 보였다. 윤기은 경향신문 기자는 숏폼 동여상을 활용해 뉴스를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전했다.(Link) '암호명 3701'이란 이름으로 틱톡과 유튜브 쇼츠를 공략중이다. 전담자는 아니고 현업과 병행하는 상황 속에서 말 그대로 '분투기'를 전했는데 언론 현실이 그대로 투영돼 보였다. 김유진 한국일보의 H랩 프로덕트에디터는 '탈포털 전략'의 일환으로 H랩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실행 프로젝트들을 소개해 주었다.(Link)
요즘 보기 드문 미디어 스타트업 '바이트'와 '슬리버'의 발표엔 뿜뿜 에너지가 느껴졌다. 김태헌 바이트컴퍼니 대표는 '2030을 위한 경제뉴스 맛집 차려보니'란 제목으로 무료 뉴스레터와 유료구독서비스를 진행하면서 현재 총 구독자 6만명을 넘긴 현황과 노하우를 전했다. 지금은 투자도 받고 직접 개발인력 충원해 운영중이지만, 초기에 블루닷 기반으로 유료구독을 런칭하며 협업했던 곳이라 무척 반가웠다.
지역언론의 현실과 고민을 나누는 세션 또한 '저널리즘의 미래'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대구경북 뉴스를 다루는 뉴스민은 제법 많이 알려진 유명 매체다. 천용길 대표의 발표에선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다양한 협업으로 뚫고 나가는 의연함이 묻어났다.(“지역언론 기자는 ‘길거리 저널리즘’ 실천하는 저널리즘 활동가”) 설명중에 보여준 "동네 중국집 주방장은 배달도 하고 양파도 깎습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걸린 장표가 여운이 남았다.
임아연 부국장이 발표한 당진시대는 첫머리에 연도별 매출액 등 구체적인 속사정을 담백하게 보여주었다.(Link)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물론 블로그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들을 적극 대응중이고, 미디어교육과 영상콘텐츠 제작, 연구용역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서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후위기 저널리즘'은 지난해 개괄적 내용을 다룬 단발 발표가 있었던 데 이어, 이번에는 2개 발표를 묶어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주선영 미디어허브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기후위기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와 함께 더 나은 기후위기 보도를 위해 뉴스룸내 모든 기자들의 기후 이슈 이해력(literacy)를 높이는 게 첫걸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한국에선 좋은 ‘기후보도’ 찾기 어려울까)
2022년 태풍 보도 때 깔끔한 설명으로 '일타강사' 별칭까지 얻었던 현인아 MBC 기자는 기후위기 보도를 담당하는 일선 현장의 고충과 함께 본인이 터득한 요령을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공유해 주었다. '영역을 넘어선, 호기심'과 '이야기의 시각화', 그리고 '전문가에 귀 기울이기/ 인터뷰의 중요성'이 그것이다. 1일차 컨퍼런스 마지막 순서였음에도 집중해서 끝까지 듣게 되었다. 실제 보도영상도 보여주면서 생생한 현장 경험담을 전한 덕분이었고, 왜 '일타강사' 칭찬을 듣는지 실감이 되었다.(‘기후 일타강사’ 현인아 기자 “쉬운 보도가 독자 마음 연다”)
글이 길어져서 2일차 [콘텐츠의 미래/ 마케팅의 미래] 세션의 후기는 별도의 글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