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방
포포티반이 되자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교회가 있던 대학가 후미진 원룸촌은 불법으로 개조된 방들이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멀쩡한 빌라보다는 몇 가구가 사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여러 개의 현관문이 사방으로 난 다가구주택이 대부분이었고, 포포티반 모임 장소는 그런 집의 2층 살림집 중 하나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대학가의 하숙촌이 어떠한지는 익히 봐와서 알았으나 그곳은 내가 경험했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대학가의 조촐한 하숙집이나 원룸촌이라기보다는 흡사 빈민촌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 골목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작은 고시원 건물의 벽을 헐어 본당과 교육관을 만들고 교회를 세운 그 검소함과 소박함에서 왠지 모를 경건함과 진정성을 느꼈던 이유가.
포포티반 모임방은 이름이 남달랐다.
다른 모임방은 그 방 보증금의 최대주주의 이름을 따라 '김현우 자매님네 거실'이나 '박선희 자매님네 작은방'이라는 식으로 불렀으나 포포티반 모임방은 '홍루'라고 불렀다. 흡사 기방의 이름 같다. 아마도 그 방 주인이 홍 씨 가문의 여식이려니 짐작했다. 거기까지는 맞는 추측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사연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방의 주인은 소천했다.
2년 전이었다.
그때는 내가 포포티반을 하던 때보다 교회 규모가 훨씬 작았다. 목사님이 당신의 집을 교회 삼아 십여 명 남짓되는 대학생들과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집이었기 때문에 성도들이 곧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다 같이 밥을 먹고 말씀을 나누고 운동을 하고 전도도 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코딱지만 한 집에 북적거리며 라면을 끓여 먹고 학교 과제를 하며 제집 드나들듯 했다. 동아리방에서 그러고 살아도 정분과 의리가 남달라지는 법인데,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하는 사이에 생긴 끈끈한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중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학생도 있었고, 긴 세월 가정 폭력을 견뎌오던 학생도 있었다. 이제 막 고아가 된 학생도 있었고, 아버지의 내연녀에게서 태어나 아버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학생도 있었다. 돌아갈 집이 지옥이라 떠도는 인생들이 주님 앞으로 모여들었다.
홍루의 주인공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부모의 막내딸이었다.
막내딸까지 대학에,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시킬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흙 파먹고 살기는 싫다던 딸이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생활비를 벌어서 감당하겠다며 공부하는 걸 말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서울로 올려 보낸 막내딸이 교회인지 수련회인지를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비가 오던 밤이었다. 여름 수련회를 끝내고 돌아온 성도들은 늘 그래왔듯 그날도 예외 없이 운동과 전도를 하러 나섰다.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교회이자 집이자 아지트이자 삶의 근거지였던 목사님의 집으로 모두 돌아오고 있었다. 형제들은 격렬한 운동 끝에 먼저 씻기 위해 더 서둘러 귀가했고, 자매들은 사모님과 함께 일부러 더 늦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밤길은 어두웠고 비가 와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술에 취한 차가 한산한 도로를 달려왔다. 오르막길의 둔덕에 놓인 횡단보도는 시야 확보가 어려운 구역이라 속도를 늦추어도 시원치 않은 법인데, 그 차는 오히려 오르막의 속도감을 즐기며 질주했고 신호등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노부모의 막내딸은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함께 있던 다른 한 자매는 몇 군데 골절을 입었고 사모님은 차라리 죽음보다도 못한 몸에 영혼이 갇혀 깊은 뇌사에 빠졌다.
노부모는 영문도 모른 채 막내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사지가 짓이겨지고 뇌가 으깨어진 사모님의 병상을 지키느라 목사님은 노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모는 막내딸의 사망보험금에서 장례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고스란히 헌금으로 가지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두고두고 고민을 했다고. 그래도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바로 그 일이 딸의 뜻이려니 한다고. 신의 뜻은 모르지만 딸의 뜻은 알 것 같아서, 그리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 사망보험금을 받으며 목사님은 노부모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던 홍자매의 뜻을 기리겠노라 약속하고 그 돈으로 자매들이 숙식하고 훈련할 수 있는 작은 방을 전세로 얻었다고 한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골절을 입은 또 다른 자매는 어떻게 되었을까? 리더 얘기로는 그 자매가 입원한 사이 부모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고 목사님의 집에 남은 몇 안 되는 옷가지들과 책들은 찾아가고 싶지도 않다며 자매를 데리고 떠났다고 한다. 같은 사고 앞에서 극명하게 갈라지는 부모들의 반응과 대처가 놀랍지 않으냐고. 한 자매는 비록 죽었지만 노부모의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했으나 다른 자매는 살아서 얼마든지 부모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신도 구원의 길에서 떠난 것 아니겠냐고. 그 부모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반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믿음의 시야로 볼 때엔 평가가 냉정했다.
그렇게 홍루가 탄생하게 되었다.
홍자매는 목숨값으로 훈련을 위한 방을 마련해 주는 바람에 두고두고 순교자의 반열에 오른 것 같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목숨값을 누구에게 주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피와 살을 주고 키워준 부모님이야 당연히 드리고 싶겠지만, 누가 딸의 죽음과 통장을 바꾸고 싶겠나, 차라리 내 현재와 미래를 함께 나누고 키워나갔던 영적인 가족들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 생각해 보니 홍루가 좀 더 거룩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다.
거룩한 가치에 비해 현실은 남루하기 마련이다.
훈련을 위한 방이라고는 하지만 자매들이 생활하는 곳인데 어쩜 그렇게 엉망인지, 정말 더럽기 짝이 없었다. 포포티반 모임을 하는 내내 나는 바퀴벌레가 내 기저귀가방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거듭 확인해야만 했다. 하나를 눕혀놓은 포대기 위로도 작은 바퀴벌레들이 겁도 없이 기어올랐고 냉장고는 원래 바퀴벌레 집이라도 된 듯 셀 수도 없이 바글바글 붙어있었다. 리더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대낮에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떼를 털어내고 하나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원래 바퀴벌레를 쳐다보는 것조차도 끔찍하게 여기고 그 혐오스러운 것과 마주치는 순간 바퀴벌레보다 더 빠르고 기민하게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바퀴벌레를 직접 때려잡아본 적도 없었고 두 마리 이상을 한꺼번에 만난 적도 없었다. 그 방에서 그렇게 많고 크기도 색깔도 다양한 바퀴벌레를,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낮에, 그것도 황폐한 곳이 아니라 사람이 어엿이 생활하는 가정집에서, 5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내가 직접 겪은 게 아니라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상당 부분이 사실 홍루에 창궐한 바퀴벌레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것도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 손등을 타고 오르는 바퀴벌레를 마치 무당벌레나 반딧불이라도 되는 것 같이 자연스럽게 떨궈내며 견뎌야 한다면,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해왔고 또 할 것이다.
그게 훈련이니까. 내 약점을 극복하는 것, 내가 힘들게 여기는 상황에 도전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겠노라고 부딪히는 것, 그 첫 번째 관문이 내 최대 적수인 바퀴벌레일 줄이야. 내가 그 더러운 미물만 극복하면 그다음 과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고민이 많던 포포티반의 기간 동안 홍루에서 나는 나를 넘어섰다. 손바닥으로 바퀴벌레를 잡아가며 나는 이미 조금씩 군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