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글은 이 문장으로 시작할 때가 많다. 쓰다 만 원고들 속 구석구석에 흩어져있는 이런 문장들은 'before & after'가 선명한 성형처럼 내게 일어난 가장 센세이셔널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성품상 소심하고 내향적이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피로감으로 이어지며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사람이란 누구나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제 잘난 맛에 사는 완고한 존재라는 생각에 깊이 다가가기 싫은 마음도 있다. 또 결정적으로는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단독자이고, 아무도 서로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 누군가는 서로를 남겨야 하는 절대적인 고독을 예견한다면 깊은 관계는 오히려 더 큰 아픔일 뿐이다. 일찌감치 죽음으로 친구를 잃은 어린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먼저 버리며 나를 보호하고 싶어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한다.
상처가 두려워 꽁꽁 싸매고 있던 나는 영원한 사랑에 눈 뜨면서 맨살을 드러내고 자신 있게 사람들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프고 쓰릴 때도 많았다. 그래도 사람처럼 신비하고 깊은 존재가 없다.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의 심연이 펼쳐지는 경이로움이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프리즘. 빛이 통과되는 자리에 형형색색의 고유의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인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구하다 보면 나 자신마저도 사랑스러워진다. 그래서 더 자신 있게 아플 각오를 할 수 있다. 아프게 부비고 싶어진다.
그렇게 얻은 소울 메이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오전 9시까지 온오프라인으로 등교하는 순간, 우리는 밥순이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덕수궁에 모였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반가운 전시회. 미술도 문학도 다 좋아하는데, 이것들이 서로 만났다니, 게다가 타임머신 행선지는 나의 사랑 모던 보이들이 활개를 치던 30년대 경성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전시회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누구든지 그곳에 꼭 한번 들르시길.
전시회는 끊임없이 '관계'를 추구한다.
시인과 화가의 만남, 화가와 소설가의 만남, 그들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시대에 그들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고, 전통에서 현대로 밀고 나가는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 이상은 경성의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어 주변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그곳에서 이미 유럽에서도 최첨단에 첨예하게 서있는 화풍과 문예사조를 발 빠르게 흡수하고 토해내며 우리 그림과 글의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나가고 있었다. 서로 격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나갔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며 자신의 역량을 더욱 확장시켜나갔다. 소설을 쓰면서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수필을 쓰기도 했다. 서로의 글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누군가의 그림에 시를 써넣기도 했다. 서로에게 주고받은 편지에도 혹은 심지어 결혼 방명록에도 글과 그림을 같이 남기는 익살을 보여주기도 했다.
구보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 (좌 이승만/ 우 이태준, 그의 방명록에 붓을 든 문우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은 다방이든 신문사든 매한가지.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에는 반드시 삽화가 들어갔고, 문예란 한 구석을 차지하는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예술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신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문예지와 동인지들. 어떻게든 뭐라도 만들어서 쓰고 그리고 실험하고 발표하고 교감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가장 순수한 예술적 동기와 그 결과물을 실어내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 백 년이 흐른 지금도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심지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글 쓰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글을 썼다. 이 시대에는 이런 멀티플레이어가 많았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여기서 논할 순 없겠다.
각자 자기만의 개성을 구축하는 것과 한 시대를 이끌어갈 공통의 정신을 만드는 것, 이 두 가지는 양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며 각각의 몸뚱이를 부풀려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표현으로 가장 순수한 정신을 일구어내며 그 시대에 글과 그림으로 대변되는 예술을 지켜나간 사람들, 그 열망 가득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지금의 예술이 있다.
1920-50년대 문예인 관계도
_얼기설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개인플레이로는 얻을 수 없는 예술 지평이 열렸다.
당시 우리 문예가 서로에 의해 지탱이 되었던 것처럼, 유럽의 거장들에게도 '서로'가 있었다.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저, 블랙피쉬 출판사, 2018.>를 읽으면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에서 '유'는 없다. 갑작스러운 천재의 탄생 따위도 없다. 반드시 그들 앞에 문을 세운 사람이 있고, 문을 여는 사람이 있고, 지평을 여는 사람이 있다. 그 지평 위에 새롭게 또 다른 문을 세운다. 그 누군가의 문 앞에 그들은 서 있었다.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저 / 아래 책은 전시회 도록
멕시코의 보석, 프리다 칼로
그녀에겐 원수 같은 남편이자 국민화가였던 디에고가 있었다. 압생트라는 알코올의 세계로 인도한 미술가 로트레크 덕분에 노란색의 정열에 미쳐 찰나의 색채를 완성한 반 고흐, 빈의 문제아로 불리던 클림트와 적나라한 드로잉의 터전을 잡아가던 오스카 코코슈카를 만나 본능의 세계를 꽃피운 에곤 실레, 카미유 피사로를 만나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과 접선하며 평범한 증권맨의 삶을 두고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헤맸던 폴 고갱, 보를레르의 미술 비평과 일본에서 건너온 우키요에의 평면적인 일본 그림에 심취해 전통을 파괴하는 데에 몰두했던 에두아르 마네, 자연을 보고 탐구하도록 알려준 부댕과 용킨트를 통해 모더니즘에 입성하고 마네를 통해 모더니즘의 중심에 들어와 빛의 정수를 이끌어낸 모네, 모네를 스승 삼아 후기 인상주의로 더욱 묵직한 자연의 본질을 찾았던 세잔, 세잔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단순화했던 마티스, 마티스의 원시성을 극단화시킨 피카소, 나열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들 곁엔 그들이 있었다. 스승으로 동료로 친구로 애인으로 곳곳에서 서로를 껴안고 붙들어가며 새로운 화풍과 이념을 이끌었다.
좌 : (위에서부터 차례로 건초더미 시리즈) 클로드 모네, <늦여름에 건초더미, 아침 효과, 1891> <아침에 건초더미, 눈 효과, 1891> <건초더미, 눈 효과, 1890-1891>
우: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나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발을 좀 빼고 싶어 한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싫다고 말하라고. 거절도 예의라고. 이미 진이 빠진 사람들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이만하면 애썼으니 이젠 자기를 위해 살아보라고. 이젠 좀 물러나라고, 쉬라고, 멈추라고 한다. 하지만 관계는 멈출 수 없다.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겐 관계가 약이다.
시대의 거장이 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사람은 참 중요하다.
무엇을 먹느냐가 지금 내 몸을 말한다고 하듯,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지금의 날 지탱한다. 파편화된 시대, 코로나로 더더욱 함께함은 무식한 만행이 되어버린 시대에, 언택트로든 어떻게든 만남과 사귐과 나눔과 토론은 오히려 더 절실하다. 친구들과 전시회를 나오니 와락, 덮치는 추위. 오랜만에 근사하고 우아하게 한 끼 먹어보자고 별렀건만, 추위에 나 몰라라 급히 아무 데나 들어가 먹은 맛없는 돈가스를 그래도 나는 아마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혼자 빛나는 별의 고독은 잊힌다.
정말 환하게, 피고 지면서도 여전히 밝게 빛나는 별은 하나의 행성이 아니라 별 무리이다. 내가 져도 그가 빛나고, 그가 져도 내가 빛나는, 또 다음 별의 반짝임을 예고하며 서로 손 맞잡은 별의 집합, 별들 속에서 별들이 탄생한다. 지금 나를 있게 하고 또 앞으로의 나를 있게 할 그 누군가, 그 따스함과 그 열정과 그 불일치와 그 논쟁과 그 한숨과 그 위로와 그, 새 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누는 사랑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내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든 글을 쓰게 하는 얼굴 없는 글 친구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뜨거운 첫눈 같은 사람들, 나는 어쩌면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써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1년 2월, 서울, 미세먼지 걷힌 한파 속에 유난히 별이 밝다.
황정수, 모던 금강 만이천봉! (별건곤, 제8권 제7호, 개벽사, 1933.7>
이 작품이 전시회 맨 처음에 걸려있었는데, 이 그림에 꽂혀서 이후 그림들은 콘서트장에 온 것 마냥 들떠서 봤다. 제목부터 전위적이다. 당시 경성 거리를 만이천봉에 옮겨 그들의 낭만, 좌절, 부조리를 낱낱이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