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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Dec 18. 2020

와인의 대중화, 와인 업계의 준비

나는 매월 15일이 되면 관세청의 자료를 수집한다. 1달간 수입 통관된 와인의 수치를 통계에 반영하고 흐름을 분석한다. 정화한 수치는 2021년 1월 보고서 형태로 배포가 되겠으나, 2020년은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낸 것은 아니나, 1조에 근접하는 소매시장 기준 규모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할 정도로 시장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인터뷰하는 몇몇 수입사들의 사정을 들어보아도 기본적으로 15~25%가량의 매출 증가가 눈에 보인다.     


나는 이전에 주장했던 4,900원 와인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다. 시장의 외연을 명확하게 확장해주었으며, 그 소비자 중에서 점차 가격대를 높여가며 와인을 접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12월 모 수입사가 편의점에 특별 가격으로 판매한 와인이 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와인의 가격은 9,900원이었다. 이미 눈높이가 9,900원까지 올라왔다.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간 와인 업계가 꾸준히 주장했던 주세, 통신판매 이슈가 이제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한다. 규제라고 하는 부분이 상당히 사문화되었고, 통신판매는 내가 일반적으로 주장하듯, 공식화되어도 여전히 “나만의 고객을 위한 특별 가격 리스트”에 의한 판매가 통신판매보다 훨씬 나은 시장환경을 제공할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은 와인 업계 내부적으로는 혁신적 담론이 없었고, 그저 작은 시장에 머물러서 공통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라 본다.  

   

예를 들어 통신판매의 경우 와인 업계 내부에는 여전히 이해관계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국세청에서 제도개선 관련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할 때 대리점 업계나 소주, 맥주 업계는 가지만 과실주 부문은 제대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직까지 와인 유통은 “일반 마진으로 와인 납품 → 숍/공급처의 인하 요청 → 수익성 악화 → 공급가 인상후 할인 방법으로 기본 마진 확보 → 일부 유통처의 가격 붕괴 → 다른 유통처의 항의 → 제품 철수 → 초저가 재고 방출 → 가격 붕괴 → 시장 퇴출”의 순을 따라온 것이 아니던가? 이런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간이 갈수록 고객리스트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고, 숍은 자신의 고객리스트를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통신판매가 된다고 하더라도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은 “제한된 나만의 고객”을 위한 “특별한 가격”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와인을 품격있는 문화라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는 좀 접어두면 어떨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만 하더라도 그 용도에 따라 무수히 나뉜다. 어떤 이는 한 대에 수 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택시를 타야 할 수도 있다. 버스를 타야 할 때도 있고, 혹은 남의 차에 얹혀서 이동하는 때도 있다. 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급으로 즐길 때도 있고, 그럴 때 이야기할 수 있는 한 두 마디의 팁이나 역사 같은 지식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매일 그렇게 우아하고 품격있게 마셔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렇게 좋은 모습이 아니다. 영화 사이드웨이처럼 어떤 때에는 슈발 블랑 61 빈티지를 즉석음식점에서 몰래 마셔야 하는 일도 있지 않던가? 수입사들도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소비자들의 시장을 1차적 대상으로 잡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변화가 나름 감지되고 있다. 우선 수입사들의 마케팅 방법에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와인메이커 디너가 사라졌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여러 해 동안 그 수가 점진적으로 줄어왔다. 이는 수입사의 제한된 자원을 동원해서 저녁 시간에 디너를 추진하려면 큰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 투입 대비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주52시간 근무로 인해 디너 역시 근무시간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직원들의 야근, 추가 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꽤 높아졌다는 점이다.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효능은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요인이 작용하여 와인메이커 디너는 앞으로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여러 가지를 보았을 때, 변화가 크게 일어나고 있지만, 와인 업계 자체의 와인 대중화에 대비한 준비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제도적 측면, 소비자 성향 측면, 유통 측면, 조직화 측면 모든 면에 있어서 다양한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킬 최적의 상품이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공통된 담론이 없다. 앞으로 시장 1조가 넘게 되면 국세청에서도 중점 관리하는 시장이 되는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과거처럼 약자 행세를 할 수도 없다. 물론 아직 와인 업계 전체 매출이 스타벅스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와인 업계 자체의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그에 걸맞는 업계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한두 가지 와인에 대해서 높은 이익을 매기거나, 세일 90%와 같은 낡은 방법으로는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어느 정도 마진에 대한 업계 내의 공감대, 그리고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악순환에 대해서 업계 내부의 신뢰 회복(공급가에 대한 신뢰)부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와인 업계 자체의 양극화, 유통 선진화는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그 선택은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의 선택과 변화밖에 없다. 시장이 커진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가지고 올 더 큰 변화가 무엇인지 살피고 늘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 취할 일 아니겠는가? 지구 전체에 지옥같은 2020년이 저물고 있다. 2020년 마지막 칼럼을 무거운 주제로 올린 이유는, 그만큼 2021년은 더 발전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내부적 혁신과 담론에 고삐를 죈다면 더 멋진 성과를 이룩하리라 감히 자신한다. 와인 업계의 발전적 건승을 기원하며 2020년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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