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Dec 18. 2020

와인 동호회 예절에 대하여

술을 마시는 모임이다 보니 여러가지 일이 많은 동네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와인 애호가들의 자리와 아닌 자리를 구분 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이 글은 와인 애호가들의 자리를 전제하여 쓴다.) 최근 와인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모임이 취소되었지만, 여전히 정모나 벙개는 와인 동호회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나는 동호회 모임은 잘 나가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소문은 다 듣고 있고 여러 불상사도 듣고 있다. 과거에도 종종 관련된 글을 썼으나, 2020년 말 다시 한번 와인 동호회에서 특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세 가지 정도 해볼까 한다.


첫째, 취미와 사적 관심은 구분해야 한다. 구운몽에서 성진은 팔선녀와 언어를 수작한 뒤, 추방된다. 언어를 수작했다는 것이다. 언어를 수작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본인의 본심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만화 “호오즈키의 냉철”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오니(도깨비)든 인간이든 벌레든 수꽃술이든 수컷이 다다르는 곳은 똑같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즉 남자의 다다르는 곳은 동일하다. 이 전제는 수컷들이 인정해야 할 사항이다. 다만 이 중간에 “어떤 냉철”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작업”이라는 속된 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혹자는 세련된 단어로, 혹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외모로, 혹은 물질로서 말이다. 와인 동호회는 이 각각의 유형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모임의 목적을 취미에 두고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반드시 실수할 일이 생기게 된다. 당연히 남자와 여자 양쪽을 보았을 때 절제력을 보여야 하는 쪽은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쩌면 에너지의 발산이 더 크기 때문에 그 “냉철”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신사라 불릴 수 있겠는가? 이미 부적절한 행동이 나왔다면 본인이 아무리 고가의 옷을 입고 멋진 차를 몬다고 한들 신사 소리는 듣기 어려울 것이다. 와인을 마신 뒤에 스스로의 통제력과 냉철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는 취미의 영역과 수컷의 본질 사이에 냉정을 지키지 못하는 패배자가 될 뿐이다.


둘째, 취미의 세계에서 그에 걸맞는 내부의 예절은 지켜주는 것이 좋다. 와인 취미 영역에서 내가 보는 일반적 공통분모는 바로 “향”이다. 내가 권고하는 것은 와인 자리에서 “향”에 대한 예절은 지키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와인의 아로마는 매우 섬세하며, 사람에 따라서 코의 후각세포 민감도는 수 백 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향에 예민한 사람들은 훈련을 통하여 그 능력을 극도로 발달시킨다. 나도 오랜 기간 와인을 평가해온 결과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후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특정 기능을 쓰면 쓸수록 발달하듯 이 기능도 강화된다. 와인 동호회 내에서는 이 부분이 발달한 사람의 비율이 훨씬 높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향’에 대한 예절은 지키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많이 하게 될까? 대표적인 것이 향수다. 향수는 백화점에 흔히 살 수 있고, 이미 오랜 남녀 공통 기호품이다. 이 향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꼭 향수가 아니라 화장품에도 해당한다. 여성 화장품 중에서도 향을 유달리 많이 유발하는 화장품이 있고, 남성 화장품의 경우에도 기분 나쁜 포마르 계열의 향을 풍기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경우 머리에 바르는 스타일링 관련 제품들도 향이 강한 경우가 많다.


와인 잔은 향을 모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와인 향과 주변 향이 섞인 와인 잔 안은 아비규환이 된다. 특히 섬세한 와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좋은 와인을 나눠 마시는 자리에서는 서로 같은 비용으로 돈을 나누고 그 와인을 함께 시음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옆 사람의 향이 내 잔에 들어온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저기 멀리 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 것이고, 이의을 제기하는 것은 싸우자는 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즉에 그 자리 가는 사람 각각이 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신경쓰거나, 참석할 때 본인이 오늘 어떤 이유로 향수 혹은 향이 나는데 자리를 좀 구석으로 배정해달라는 등 타인에 대한 향 예절을 지키면 더 멋진 자리가 될 것이다.


셋째, 모르면 침묵하는 것이 좋다. 세상에는 숨은 고수가 많다. 특히 와인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많다. 나도 말을 조심할 정도다. 그런데 약간 들은 지식으로 첫째 이유를 목적으로 현학적 이야기를 즐비하게 내세우거나 자신이 무엇을 마셔보았다는 자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 경우에는 관심을 받기보다는 나의 본질이 얼마나 얕은지를 가감없이 다 드러내는 일이 된다. 나도 지도로 와인을 배운 사람이다. 생각보다 전세계 모든 와인산지를 가본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늘 외부에 말을 할 때 조심하고, 자료 조사도 많이 한다. 게다ㅏ 와인 세계는 계속 변화한다.


예를 들어 하나 설명해보자. 2000년대 중반 신의 물방울에 나온 안드레아 프랑게티(Andrea Franchetti/Tenuta di Trinoro)의 팔라찌(Palazzi)는 97년부터 99년까지 시험적으로 생산되었다. 만화 출간 시기는 이 것이 사실이었고 애호가들에게 큰 관심을 얻어 희귀 와인으로 인식되었다. 2020년인 지금은 어떨까? 그 이후 프랑게티는 이 와인의 가능성을 보고 메를로 와인으로 재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팔라찌가 생산되고 있다. 만약 팔라찌에 대해서 신의 물방울 만화를 보고 배운 다음 주변에서 이 말을 설파한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 결과는 달리 말을 하지 않겠다.


어느 취미든 그 취미 내의 예절이 있다. 그리고 초심자에 대해서는 초심자를 위한 배려가 있다. 꼭 와인 동호회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앞서 설명한 모든 사항을 잘 생각해보고, 초심자에 대한 배려를 고려해볼 때 이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이타심”이다. 내 행동이나 지식 이전에 타인의 생각, 타인의 의견, 그리고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타인이 불쾌해하지 않는지에 대한 좀 더 신중한 “이타심”을 품는다면 훨씬 멋진 와인 자리와 즐거움이 가득한 환경이 될 것이다. 비록 코로나로 나도 혼자 데일리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언젠가 지인들과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를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올해의 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