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Mar 21. 2021

맛있는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르를 찾아서

나는 칼럼에 모든 품종 이름을 국립국어원 표기법 기준으로 쓴다. 그래서 피노 누아(Pinot Noir)도 피노 누아르라고 쓴다. 좀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겠으나, 이런 기준이면 누아르 필름은 누아 필름이 되어야 한다. 언어현상이 사람들의 일상적 발현 형태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 표준을 따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 우아하고 섬세하며 모든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품종은 레드와인 품종의 종착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최근에 맛본 여러 섬세한 와인(예를 들면 섬세한 가르나차의 끝을 보여주는 레르미타(Alvaro Palacios l’Ermita) 혹은 우아한 시라 와인의 끝을 보여주는 폴 자불레의 에르미타 라 샤펠(Paul Jaboulet Aine Hermita 등)들도 있지만, 지향점의 수, 가격 등 여러 면에 있어서 피노 누아르를 따를 포도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와인 양조에 있어 늘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미국 포도원들에게 있어 피노 누아르는 언젠가 정복해야 하는 궁극의 포도인 셈이다. 지금까지 피노 누아르는 주로 오리건주에서 많이 재배되어 왔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재배되었으나, 품질 면에 있어서 평론가나 소비자들의 평가에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 왔지만, 지금은 그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시장 분석 보고에서도 2020년은 미국 와인에 좋은 기회가 되어 큰 폭의 증가가 있었고, 2021년에도 이러한 트렌드는 이어질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지금까지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진판델, 프티 시라에 국한되었던 캘리포니아의 주력 레드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차적인 시도로는 메를로 품종을 들 수 있다. 개인적 견해로 메를로는 포도가 잘 익지 않으면 포도에서 풋내음이 많이 나서 꽤나 맛을 내기 까다롭다. 그래서 고급 메를로는 특히 가격이 비싸다. 미국 포도원들은 최근에 보급형 와인에서도 좋은 메를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제는 피노 누아르까지 멋진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캘리포니아에서 피노 누아르를 특히 잘 만들어내는 지역을 꼽자면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카운티에 위치한 산타 리타 힐즈(Santa Rita Hills AVA)와 나파밸리 북쪽 멘도시노 카운티에 위치한 앤더슨 밸리(Anderson Valley)를 꼽고 싶다. 산타 리타 힐즈의 와인중에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있는 와인은 산디(Sandhi)와 도멘 드 라 코트(Domaine de la Cote)를 들 수 있다. 두 포도원 모두 인도계 와인 메이커인 라자트 파(Rajat Parr)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소믈리에 출신이다.     


이 지역들은 모두 다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태평양을 보고 있는 이 지역들은 해풍이 불어오는 골짜기 영역에 있어서 낮은 뜨겁지만 상대적으로 피노 누아르나 시라와 같은 포도들이 잘 자란다. 태평양 연안으로는 이런 와인 생산지들이 있는데, 칠레의 카사블랑카 밸리 역시 이러한 기준에 맞다고 볼 수 있다. 앤더슨 밸리는 상대적으로 산골짜기에 있는데, 포도밭도 22개, 생산자는 54개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동네다. 이 두 지역은 모두 그렇게 넓거나 생산량이 많은 와인은 아니지만, 국내에도 일부 수입되고 있다. 과거 시음해본 롱 메도운 랜치(Long Meadow Ranch) 피노 누아르는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맛으로 대단한 깊이를 준 기억이 있다.     


다만 가격들이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기에 좋은 피노 누아르들이 최근들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두 개 정도를 안내할까 한다. 하나는 얼마전 우연히 맛보아서 크게 놀란 와인인데, 그래블리 포드 피노 누아르다. 포도는 여러 포도밭에서 구매했기에 지역은 캘리포니아로 잡혀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맛을 보았을 때 안정감 있으며 피노 누아르가 주어야 하는 기본적인 덕목들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격은 매우 합리적이어서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또 하나의 와인은 웬티(Wente)에서 생산하는 몬터레이 지역 아로요 세코(Arroyo Seco, Monterey)의 피노 누아르다. 몬터레이와 아로요 세코 역시 많이 알려진 지역은 아니지만, 웬티 포도원이 오래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리바 랜치(Riva Ranch) 포도밭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진다. 웬티의 피노 누아르는 상당히 진하고 관능적인 아로마를 보여주는데, 피노 누아르의 오리지널 베리류의 느낌에 덧붙여, 계피가 뿌려진 애플파이 같은 진득한 느낌과 함께 안정감 있는 산도를 같이 느껴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피노 누아르를 생산하는 이유는 고급 소비자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의 범주가 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질수록 피노 누아르에 대한 소비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른 생산자들의 노력 역시 함께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피노 누아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가시적인 성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와인 숍에 가서 이제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르라 하더라도 생산지랑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서 즐겨본다면, 훨씬 즐거운 와인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인의 관상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