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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an 10. 2022

나는 왜 다시 보르도로 돌아가는가?

지금은 그 개념이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와인 = 보르도 와인(Bordeaux)이라는 공식은 많은 와인 애호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와인 품질의 개선에 투자를 했고, 지금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이점이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와인의 여건상 아무리 단가를 낮추려 하더라도 어느 이하로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과거에는 숙성시킨 맛을 좋아하는 고객 취향이 점차 신선한 과실 터치의 느낌을 좋아하게 된 것도 보르도 와인의 상대적 관심을 낮추는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와인은 숙성한 것이 좋다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웠다. 특히 보르도 그랑크뤼 2등급 이상의 와인,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바롤로(Barolo), 부르고뉴 뉘(Nuits) 지역의 최고급 와인들은 극단적 장기숙성이 되어야 제대로 된 맛이 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떤 와인은 시음적기에 “네 손자에게 물려주어라”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겠는가? 와인을 제대로 숙성하면 맛이 정말 좋아지고 놀라운 아로마를 선사한다. 그리고 디켄팅을 해야 하는 고급 와인들은 그에 맞는 핵심 가치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시절이 바뀌고 사람들의 성정이 급해져서인지 모르나, 점차 이런 맛을 기다리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물론 심각한 와인 애호가들은 잘 숙성된 와인에 대한 기다림을 잘 지키고 있으나 시장에서 이런 소비자의 비율은 이제 생산자들이 무시해도 될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오히려 와인 대중화에 맞추어서 소비자 취향은 좀 더 빠르게, 이른 시점에도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와인으로 옮겨졌다. 그 덕분인지 요즘 바롤로의 경우에도 몇 년 지나지 않아도 낮은 타닌, 상대적으로 힘 있는 보디감, 안정적 산도를 보여주는 젊은 빈티지의 것을 만날 때가 있다. 양조학과 포도 수확의 최적기를 관찰하는 능력, 포도밭을 관리하는 기술 등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던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도와주는 여러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런 여러 기술과 숙성의 미학이 어우러져 제대로 된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보르도다. 다른 지역의 와인들 가격이 상대적으로 오른 면이 있어서 최근 보르도 와인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낄 정도다. 보르도의 그랑크뤼 클래스 와인들의 경우에도 5등급의 품질이 과거에 비해서 정말 좋아졌다는 느낌을 준다. 몇일 전 맛본 포이약(Pauillac) 지역의 오바쥬 리베랄(Haut-Bages Liberal)의 경우에도 정말 멋진 맛을 보여주었다. 보르도 와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블랙커런트, 카시스 계열의 아로마에 좀 더 기분 좋은 과실의 터치가 좋은 균형감을 주면서 코 안에, 그리고 입 안에 멋진 행복감을 주었다.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것도 어쩌면 보르도 와인이라 하겠다. 고기에 화이트를 곁들일 수도 있지만, 마리아주를 만들어낼 확률이 가장 높은 와인은 내 생각에 보르도 와인을 최고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 토스카나의 키안티나 브루넬도 디 몬탈치노 정도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보르도 와인이 주는 고기와의 궁합은 상당하다. 최적의 숙성 상태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5~6년가량된 저렴한 보르도 와인도 정말 맛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르도 와인이 주는 장점은 몇 년 지난 후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가 화이트 와인은 가급적 빨리 소비하는게 좋다. 가벼운 레드 와인 역시 몇 년 지나면 포도의 힘이 떨어져 품질이 급격히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역순으로 가는 것이 보르도다. 물론 보르도 와인도 맛이 꺾이는 시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와인들에 비해서는 그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같은 가격대의 와인을 비교해도 말이다. 덕분에 나는 요즘 여러 지역들의 와인들을 돌고 돌아서 최근에는 자꾸 보르도 와인을 찾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보르도 역시 엄청나게 많은 포도원들이 있기에 어느 포도원이 최고이고 가성비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러 샘플들을 테이스팅 해보아도 그 감을 잡기가 꽤나 까다롭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보르도 와인은 과거의 보르도 와인이 아니며, 여러 경쟁지역 대비 그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재 소비자의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트나 숍에 가보면 과거에 비해 적당한 가격대의 보르도 와인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와인은 보르도라는 공식은 유효하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아주 멋진 맛과 가격대의 보르도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 내게 있어 여러지역의 와인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고 다시 돌아오게 된 보르도는 여전히 그 곳에 있다. 시인이 봄을 찾아 하루종일 동구밖을 걸어다녀도 찾지 못하다가 해질녂 집에 돌아와서 마당에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에서 봄을 발견했다 하지 않는가? 사람이란 돌고 돌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다. 내가 보르도로 돌아가고 있는 이유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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