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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Aug 14. 2023

주류 할인판매 허용(유권해석)이 불러올 나비효과

할인같은 느낌만 날 것 같다.

(칼럼의 주된 입장은 수입와인 관련 주류업계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의견을 정리하여 담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소비자 관점의 시각은 다른 칼럼으로 올리겠습니다.)


칼럼을 쓸 때 늘 ‘다음 주제는 무엇으로 하나’하는 고민이 있다. 보통 칼럼 주제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 달은 칼럼을 쉬거나 하나 정도의 칼럼으로 마무리 한다. 물론 와인 자체 이야기를 써도 큰 문제는 없으나 요즘은 와인에 관해 워낙 전문적으로 칼럼을 잘 쓰는 저자들이 늘어나서 굳이 내가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시장 관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내 소임이 아닌가 싶다. 서론이 많이 길었다.     


2023년 7월 31일자, 재미있는 뉴스가 올라왔다.    

  


여기서 국세청의 ‘유권해석’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술 덤핑 판매, 거래처에 할인 비용 전가 등을 제외한 정상적인 소매점의 주류 할인판매는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수입 와인 업계를 포함한 주류업계, 그리고 주류 유통업계, 외식업계 모두 큰 변화와 혼란이 예상된다.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이 있을 것이니, 당사자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다.     


소비자: 표면적으로 싼 값에 와인을 산다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수입사: 수입사 입장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악성 재고 혹은 희귀 와인이지만 1~2병 남아서 납품하기도 애매하며 수입 중단을 결정한 와인이라 하면 이 재고들의 처분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아울렛으로 넘겨서 헐값에 넘긴다 한들, 이 상품이 미끼 상품으로 해당 매장에서 더 싼 가격에 팔리게 되면 다음에 해당 와인을 다시 들여오기 어렵게 된다. 지금까지는 일부 소매장이나 업장에서 내가 납품한 가격보다 낮게 팔지 못하게 되어 있기에 가격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만약 하나의 와인 가격이 하나의 업장에서 납품가보다 싸게 판다면 다른 거래처에서 가격을 낮추어 달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일부 고급 와인, 희귀 와인은 공급자 우위의 상태이기에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은 일반 와인의 경우 가격이 무너지는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당연히 수익성이 매우 나빠질 수밖에 없다.     


숍: 가장 큰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특히 어떤 숍이 가격을 엄청 싸게 냈다 하더라도 공급자(수입사/대리점)가 발뺌을 한다면 상대 가계의 납품가가 어떠한지, 그리고 경쟁숍이 할인을 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좋은 와인을 받기 위해 공급자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거래조건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악성재고를 받은 뒤, 거의 원가에 물건을 빼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기존 수익을 내는 와인을 할인 판매 하더라도 다른 숍과의 경쟁 때문에 약간이라도 더 싸게 내야 하는데 한 번 내려간 가격은 다시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소주 가격과 같이 업계 인정 가격이 정해진 주류는 할인을 끝낸 뒤에 다시 가격이 회복되겠으나, 와인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숍들의 고민은 극단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식음료업장: 사실상 현재 식음료업장의 와인 시장도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와인 레스토랑/비스트로 등을 지향하는 업장인 경우에도 고객들의 와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가격적인 이익이 상당히 제공되어야 하는데, 이 제공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식음료업장은 납품가보다 낮게 판매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가격인하 등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시중가는 낮은데 업장가는 왜 이렇게 높은가” 하는 고객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당연히 주류 매출이 더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앞서 소비자 입장을 약간 더 설명하자면, 이제는 어느 가격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게 되었다. 비즈니스에서 절대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몇몇 상품에 대해서는 미끼 상품으로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한 뒤, 나머지 제품에서 이익을 보전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될 것이다. 밖으로 나타나는 가격표는 내려가는 착시효과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가격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져서 어느 와인을 사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숍마다 가격체계의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중고가 와인의 매출 역시 늘어나기 어렵다.     


쭉 써놓고 보니, 승자가 별로 없는 정책이다. 과거에 여러 폐단이 있어서 관련 규정을 만든 것인데 정부가 나서서 생색내기 식으로 유권해석을 내어놓으니 업계의 혼란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번 유권해석은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시장의 성장을 정체시킬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득을 얻는가? 정부는 소비자 물가가 바깥으로 일부 인하되었다는 착시효과, 그리고 민원을 처리했다는 업무 실적만 얻을 것이다. 일부 수입사들의 경우에는 큰 거래처와 거래함으로써 이러한 위험도를 낮출 수도 있으나,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 수입사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말 한마디는 이렇게 중요하다. 정부에 바라건대 말 한 마디, 해석 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결국 주세를 많이 걷어야 하는 것이 국세청 입장 아니던가. 앞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세상이 아비규환이다. 칼럼 주제가 마를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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