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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an 07. 2024

체코 와인, 발견되지 않았던 보석

개인적으로 체코를 가본 적은 없다. 그리고 체코의 와인은 15년 전에 화이트 와인을 한두 가지 정도 맛본 수준에 머무르는데, 당시에는 와인 자체의 품질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3년 12월이 되어 체코 와인이 한국에 소개되는 시음회가 있다는 소식, 그리고 시간이 맞아서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음회에 가보기 전에 기대는 약간의 우려와 약간의 기대가 뒤섞인 것이었으나 방문 이후 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어떻게 해서 내 생각이 깨졌는지 살펴보자.


체코라는 나라에 대하여


우선 내가 체코를 가본 적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체코를 가본 적이 없으니 해당 국가의 와인 지역이나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정보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현학적인 말이 될 것 같다.(물론 언젠가 유럽 여행 일정을 잡게 된다면 체코는 가고 싶은 국가 리스트에 있으니 꼭 한 번 가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대신 평소에 역사에는 관심이 많고 특히 중부 유럽의 역사, 그리고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자료도 자주 찾아보기에 늘 눈여겨보던 국가다.


체코는 1차대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처음으로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슬로바키아와 함께하여 체코슬로바키아로 불렸다. 고등학교 때 내가 보던 교과서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너무나 당연한 국가였으니 내 귀에는 여전히 체코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들린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각각 독립 국가가 되었기에, 지금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라 부르면 절대 안 되겠다.


체코라는 국가는 과거 여러 수난사가 많은 곳이다. 특히 2차대전 이전에 공업화가 많이 되었다는 이유로 나치 독일에 의해 침공/점령되기도 했다. 특히 침공 직전에는 독일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수데텐 지역을 할애해주어야만 했는데, 체코인들의 의사는 상당히 배제된 채로 협상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영국/프랑스/나치 독일/이탈리아에 의해 이루어진 뮌헨 협정인데, 열강에 의해 침탈당해야 했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왠지 우리 의사와 관계 없이 38선이 그어졌던 한민족의 역사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나치 독일의 체코 점령 이후 그들은 우수한 무기와 산업 기반을 토대로 2차대전동안 철저하게 병참기지로 활용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한반도도 농산물과 지하자원이 전쟁자원으로 수탈되었으니 우리의 정서와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들의 틈 사이에 있었기에 여러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고 와인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루아와 품종, 그리고 와인


와인 이야기 이전에 이렇게 지역적인 역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이 유럽의 와인 산지 중에서도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경우 대표적인 품종인 리슬링(Riesling)을 필두로 뮐러 튀르가우(Muller-Thurgau) 가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riner) 같은 품종이 주력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피노 그리(Pinot Gris),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같은 여러 품종이 유럽에 산재해 있는데, 체코에는 이 포도들이 모두 생산된다. 토착 품종도 있으나, 지역적으로는 유럽의 대부분 포도들을 다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용성이 좋다. 주요 산지는 동남부에 있는 모라비아 지역으로서 중심에는 브르노(Brno)가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이동하면 오스트리아 빈(Wien)이 있는데 오스트리아 역시 빈의 동쪽 지역이 와인 주산지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지역이 남북으로 이어지며 유럽 중부에서 동유럽에 아우르는 중요한 와인 산지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전체적인 와인 특징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오스트리아 그뤼너 벨트리너에 대한 내 개인적 평가를 이야기 하자면, 리슬링, 비오니에, 소비뇽 블랑 세 품종을 삼각형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 점을 찍으면 그뤼너 벨트리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시음을 해본 체코의 와인들은 리슬링의 경우에도 좀 더 그뤼너 벨트리너에 가까운 캐릭터, 그리고 소비뇽 블랑은 매우 주목할만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는데 뉴질랜드의 캐릭터를 넘어서는 우아한 산미와 아로마를 보여주었다. 개별적인 품종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으며 소비자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여질 와인들이 많았다.


시음회 현장에서는 여러 체코의 와인들을 시음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는데, 한국 시장에 매우 잘 맞을 수 있는 제품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Kutná Hora의 피노 그리, 리슬링 와인이 주목할만 하였으며, 특히 Fabig의 소비뇽 블랑 라인업의 경우에는 프리미엄급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 없는 멋진 캐릭터들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품질 상승 잠재력도 대단하다고 판단된다.


체코 와인이 한국에 잘 소개되려면


한국 시장의 현재 트렌드는 화이트 와인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2023년에는 레드 와인의 비중이 60% 아래로 떨어졌으며, 이 수치는 2024년 조금 더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머지 40%중 거의 반반을 화이트와 스파클링이 양분하고 있다. 화이트는 지금 한국 시장에서 절대적인 강자가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이 아직 확연하게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구대륙, 신대륙, 풀보디, 미디엄 보디 등으로 어느 정도 소비자의 취향이 잡혀져 있으나 화이트 와인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애호가가 아닌 이상 정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에서 화이트 와인의 물량 점유율은 이탈리아가 18%로 1위를 차지하나 그 뒤를 프랑스, 뉴질랜드, 칠레가 각각 15~16% 점유율로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미국이나 스페인도 9% 수준이기에 절대적인 강자가 없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뉴질랜드의 화이트는 최근 2~3년 사이 시장 점유율을 극단적으로 높였는데 소비뇽 블랑이 일등공신이었다.


화이트 와인 시장은 아직까지 어느 국가든 접근을 할 수 있는 좋은 시장이며, 특히 소비뇽 블랑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상당히 있기에 매력도는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한국 소비자들은 관광지나 국가의 선호도와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상당히 비슷한 경향을 띠는데, 한국인들의 체코 관광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히 좋은 만큼 와인에서도 적극적인 접근 전략을 만든다면 상당한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체코 와인이 한국에 소개되고 앞으로 많은 소비자가 그 혜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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